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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다 못해 지독하게 담백했던 호흡법의 매력

해일 2024-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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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오는 호기심으로 이 작품의 첫 부분을 읽기 시작했고 시작점부터 흥미로웠다.

 

호흡법이라는 제목 때문에 뭔가 명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일까 라는 기대와 예상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다른 소재와 분위기라 더 신선하고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삶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중에 음식 뿐만 아니라 호흡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중요한 호흡에 대해서 화자의 삶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화자는 희주라는 막 출산한 친구와 이야기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둘이 어떤 관계였고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도입부부터 보여준다

이야기의 출발점이 겨울이라는 배경을 활용한 것도 여러모로 적합했다고 생각된다. (겨울은 호흡이 눈으로 보이는 계절이다) 

희주라는 캐릭터가 입은 롱패딩과 수척함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자 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들에 대한 각인이 잘 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맨 처음 읽었을 때는 화자와 희주 모두 여자가 아닐까 싶었는데

점점 읽다 보니 화자가 남성으로서 희주와 복잡 미묘한 관계이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들이 보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술들이 꽤 능숙하게 느껴졌으며 과거의 분량이 높지 않았는데 많은 부분들이 설명되었다

초반에는 주로 희주의 아기에 대해서 화자가 면회가서 보고, 둘의 과거 관계들이 교차되며 나타났다

희주의 아기는 누구 아이일까(아빠가 누구인지) 하는 궁금증도 들긴 했는데, (참고로, 중간에 사귄 남자친구에 대한 언급이 나오긴 한다

초반의 이런 호기심과 긴장감들이 이야기 도입부로서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둘의 관계들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야기의 본론과 클라이막스로 견인하는데 많은 영향을 준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축의 이야기로 읽힌다.

 

첫 번째로는 화자와 희주의 이야기.

화자와 희주는 영화 모임에서 만났고 관계가 뚜렷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희주가 누군가의 아이를 낳게 되었다

그 이후로 보호자 역할로 병원에서 아기가 인큐베이터에서 숨을 쉬는 것을 본다

자가호흡이 급선무라는 아기, 배달한 모유를 통해 조금씩 크고 있고 아기는 서서히 호흡을 찾아간다

뒷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밝히지는 못하지만 화자와 아기, 희주의 관계가 달라지는 부분이 나타난다.

 

두 번째로는 화자의 연극과 관련된 이야기.

화자에게 연극이 대체 뭔지를 묻던 이현이라는 죽은 후배 배우

화자는 어떤 이유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연극을 그만두고 강의만 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묻고 권유해도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죽은 이현의 남자친구였던 카센터 직원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는 사실 화자에 대해서 모두 알고 있었다

화자가 연출가 뿐만이 아니라 한때 배우라는 것도.

 

두 개의 이야기들에서는 호흡에 대한 공통점이 있다

아기도 숨을 쉬어야 살 수 있고, 연극에도 호흡법이 있다

두 축은 교차하면서 화자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격하고 요동칠 수 있는 감정과 사건들을 비교적 담백하게 절제하며 써내려간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제목과 같이 삶의 호흡법에 대한 이야기로 중심성이 모아지는데, 사칠팔 호흡법에 대한 부분이 중간에 언급이 된다

수가 화자에게 정 가져가고 싶다면 사칠만이라도 가져가보라고 한다. 그 다음의 팔은 저절로 오는 수가 있다며

화자는 자신의 삶에서 다가오는 사건과 모든 고통, 시련을 온몸으로 통과한다. 호흡으로 보내버리는 듯 하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칠팔 호흡법의 말 그대로 팔초가 따라오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부분에서 과연 그는 어떤 경지에 이르렀을까

씁쓸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담담하게 느껴진 인상적인 결말이었다

한동안 이 소설의 정서와 장면, 캐릭터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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