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밤부터 시작하여 오전 무렵까지 전개된다. 사랑은 빛으로서 상징되는데 이야기의 주된 배경이 되는 시간, 밤은 사랑을 상징하는 빛의 대비를 염두하고 설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인 두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일종의 불륜인 상황인데,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흥미진진하다. 턱수염과 귀찌라는 이름으로 도입부 부터 확실히 캐릭터 각인을 시키면서 둘의 기이한 행태의 사랑 담론이 펼쳐진다. 귀찌는 턱수염의 부인과 불륜 행위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턱수염이 모든걸 알고 있는 상황이다. 쇼부를 봐야 할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술집에서 화자가 바라보는 둘은 비장한 분위기가 보였으나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펼쳐진다.
일반적으로는 단편소설에 여러 명의 화자가 나오는 것을 피하라는 작법서의 조언을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조언을 가볍게 파격하며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단편소설에서는 처음 보는 방식이라 형식도 흥미로웠지만 내용도 꽤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세 명의 화자와 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중심성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화자가 바뀌는 부분이 오히려 더 작품의 메시지를 뚜렷하게 해준다.
첫 번째 화자는 술집에서 이상한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이다.
그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호기심에 가득 찼다가도 이상하게 여긴다. 둘의 대화를 듣다보니 자신이 기다리는 이상한 여자에 대해서 이를 데 없이 너그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그녀에 대한 일종의 분노나 원망의 감정으로 시작했었다) 어쩌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신의 다소 조금(?) 이상한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역설적인 치유 효과가 일어난 것일까. 관찰자 화자 덕분에 주인공의 관계를 더 이해하기 쉬웠고 묘사나 표현들도 상당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남자 둘의 대화가 평범하지 않았기에 작위적인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실제로 귀찌와 턱수염, 나(화자)가 존재하는 인물처럼 느껴져서 흥미롭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턱수염이 비꼬거나 비아냥거리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면서 봤지만, 보다 보니 이 캐릭터들은 진심이었고 그런 면에서는 작가가 캐릭터 설계를 철저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불륜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낯설게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두 번째 화자는 둘을 경포대로 태워주는 택시 기사이다.
턱수염과 귀찌는 술을 진탕 마시고 새벽 2시 40분경이 되어서 어디론가 가겠다고 택시를 잡는다. 심지어 턱수염은 자신의 부인과 어떻게 연애해야 하는지에 대해 귀찌에게 조언을 해주기 시작한다. 첫 번째 화자와는 인물도 사랑에 대한 관점도 다르지만, 일관성있게 바톤을 받아 둘의 이야기를 선형적으로 계속해 나간다.
택시 기사는 별별 사람들을 태워봤지만, 이 둘을 보며 가증스럽고 한심하며 인생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택시 기사에게 사랑은 환각제이며 애물단지일 뿐이다.
세 번째 화자는 경포대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노인이다. 노인은 자신의 과거를 반추한다.
화자는 사랑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내가 찾아다닌 건 사랑이 아니라 여자였다. 사랑과 여자가 어떻게 다르냐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도끼로 장작을 쪼개듯 분명하게 잘라 말할 수 있다. 여자는 사랑이 아니고, 사랑은 여자가 아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과 여자라는 말이 나에게는 도무지 섞일 수 없는 말처럼 여겨진다. 여자는 오히려 사랑이라는 말을 훼손하는 대상, 아니면 사랑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대상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마지막 장소에 이르러 밤 동안 보이지 않았던 두 남자의 갈등들이 빛 앞에서 부딪힌다.
세 명의 화자와 남자 둘의 기이한 사랑들은 어쩌면 망한 사랑처럼 보인다. 경험했거나 혹은 지금도 진행 중인 사랑들. 이 둘의 기이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혹자는 자신의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이러니하게 위로받기도 하고 사치라고 여겨지기도 하며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으로 사무치기도 한다.
곳곳에 박혀있는 유머들 역시 이 작품의 톤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끝까지 이야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끌고 가는 지점들 역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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