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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큼이나 실제적인 “나”

뮤에그 2024-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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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글을 읽을 때면 단어와 문장으로 내용을 파악하려고 애써왔다. 

이 단어가 여기에 쓰일 수 있구나, 이런 문장의 표현은 참 마음에 든다며 메모장을 활용해 저장했다.

그럼, 영상은? 마음에 드는 유튜브 영상의 길이가 10분을 넘기지 못했고, 되도록 짧은 영상을 틀어두고 그냥 대충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혹은 다시 볼 영상 보관함에 넣어두고 잊어버렸다.

 

존재의 사막을 펼쳐 든 순간, 눈으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면서 머릿속에 단어를 나열하고, 이미지 형태로 시각화를 동시에 내 나름대로 짜깁기한 상상의 사막 이미지를 재생해 보았다. 이 소설의 장점은 글 전체의 배경이 되는 사막과 내면적 자아인 주인공이 행하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한 사람의 초상과 죽어가는 인생을 잘 표현했다는 점이다. 
분명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난해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작가의 매력적인 문체로 표현되어 책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 자연스럽게 내용이 “읽힌다”고 느껴졌다.

사막에 갑자기 떨어진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다 존재의 사막을 읽는 내내 사막의 갈증을 오롯이 느끼며,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싶어 미쳐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사막의 한가운데 욕망을 비워낸 주인공을 이정표 삼아 소설의 그 끝에 도달하자,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숨이 턱하고 막힌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은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실체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계속 사막은 죽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은 살아 숨 쉬고 있는 느낌이었다.
과연 죽음이 만연한 사회가 더 고통일까? 아니면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고통일까? 글 속에서 인용한 시를 보면 생과 사에 대해 묵직한 돌직구 한 방을 날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인상 깊은 내용이라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살아 숨 쉬는 소설이 되는 데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당연히 소멸할 생명들은 여전히 척박한 땅을 개간하기 위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희망만 가득 찬 미래를 가득 품고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도 우리가 마주한 참혹한 현실에는 아름다운 동화 같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은 없다. 여기서 사랑, 생명이란 단어가 등장하지만, 가슴 벅찬 이것들은 너무 당연하게 소멸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흘러가는 인생의 흐름 속에서 간혹 사랑 한 줌과 이따금 내리는 검은 비 한줄기에 행복을 느낀다.

소설을 읽는 동안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잘 사는 인생이란 과연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삶을 살아갈까? 나는 사막의 한 부분일까?

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질문들의 답은 영영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막화 되어가는 나 자신 속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한 줌의 오아시스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독자 자신에게 철학적 사유와 많은 물음을 쏟아주는 소설은 참 귀중하다. 갑작스럽게 만난 존재의 사막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며, 리뷰를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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