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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아들어갈 때

미카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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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면에서 낯설었다. 그래서 탁월한 소설이었다. 

 

#낯선 구조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한다. 작가는 주인공의 서사를 잘게 쪼개어 흐트러뜨린 다음, 독자에게 무작위로 제시한다. 꼭 곤(坤)이 가지고 노는 직소 퍼즐 같다. 독자는 하나씩 주어진 퍼즐 조각을 살펴보며 전체의 이미지를 그린다. 채워지지 않은 빈 곳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긴다. 마지막 한 조각을 끼워맞춘 뒤에야 비로소 그림은 완전해진다.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지는 느낌. 이 소설은 갈등-위기-해결이라는 소설의 일반적인 구조를 철저히 배반하고 있다. 

 

#낯선 인물 

이름조차 낯설다. 성별을 짐작할 수도 없을 뿐더러 잘 쓰지 않는 발음. 이름을 통한 선입견마저 작가는 완벽하게 차단해 버린다. 글에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장치다. 주인공의 양면성이 따로 제시되면서 앞서 이야기한 퍼즐 구조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가족의 서사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사건들은 없다. 그들은 취미생활을 하고 친구와 싸우고 일하고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짓는다. 그러나 디테일이 선명하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인물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하고, 익숙하면서도 대단히 낯설다. 

 

#낯선 어휘 

먹새벽. 잦다란, 땀벌창, 자약하다. 첫 두 문단부터 쏟아지는 낯선 어휘들. 작가의 내공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흔치 않은 재료로 만들어진 물건은 때깔부터 다른 법이다. 작가의 언어는 어때야 하는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르고 다듬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을 주는 작품이다. 

 

#낯선 주제 

작가는 말한다. "어른을 지키는 아이를 보고 싶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모든 인간은 나약하고 특히 어른들은 더 나약하다는 것을. 아이가 부모를 잃고, 부모가 아이를 잃는 이야기는 지금껏 많았다. <지진광>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른도 아이에게 기댈 수 있다. 아이도 어른을 보듬을 수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한지, 옳은지, 멈춰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작품은 성공적이다.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즐은 그 물적 특성상 정지된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한계도 거기서 비롯된다. 주인공은 단지 조각났을 뿐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면의 변화를 감지한다. 언어로 만들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끼워 맞춰나가며 느끼는 작은 기쁨, 드디어 마지막 피스를 제자리에 놓았을 때 시야가 환해지는 경험. 그것은 주인공의 변화가 아니라 읽는 우리의 변화다.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이야기 조각들이 가지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반드시 읽혀야 한다. '읽는 행위'가 있어야만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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