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구역이라고 백날 써 붙여도 경고문구 밑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아래층에서는 담배 냄새가 올라오고, 저 앞에 미적거리며 걷는 사람은 담배 연기를 사방에 퍼뜨리고,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는 꽁초로 테러당한 상태다.
이 소설은 환멸이 나는 일상 속 풍경에서부터 시작한다. 길에서 담배를 태우는 남자가 있다. 갑자기 나타난 젊은이, 김준오는 벽돌로 남자의 머리를 내리친다. 벽돌이 끼어들어 남자를 가격하는 순간 분노는 사라지고 경악이 남는다. 누구나 한 번쯤 머릿속에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 죽이고 싶다고 생각은 해도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소수다. 그런 짓을 하면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범죄자 취급을 받을 테니까 말이다. 도입부부터 독자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하며 하얗게 질린 채 소설을 읽게 된다.
김준오는 순순히 자신이 저지른 짓을 자백하고 당당하게 포토라인에 선다. 그는 담배 연기 뒤에 아이와 엄마가 있었다고 말한다. 추악하고 이기적인 동기를 가진 다른 범죄자들과는 확실히 차별점이 있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자들을 악으로 분류하고 처단하는 모습에서 히어로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현실적 배경을 토대로 한 히어로의 결말은 경찰에 잡히고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악당을 없앴으니 세상이 한결 나아졌다고 좋아하기에는 어딘가 찝찝하다. 그는 정말 히어로인가, 범죄자일 뿐인가.
‘신은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는다. 신에게 인간은 구더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신에게 인간이 너무나 하찮은 존재라서 악을 없애지 않는 거라면, 인간은 직접 나서서 악을 없애야 한다. 인간은 법을 만들어 악을 통제한다. 대외적으로는 그렇다. 소설에서는 법을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인공자원이라고 표현한다. 지금의 현실을 보면 법은 악한 자들을 처벌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법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은 깨어졌다. 각자도생. 불안해진 사람들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그렇게 김준오와 같은 자신만의 정의를 가진 사람들이 생겨난다. 소설 속 인물은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들은 위태로운 현실과 함께 무너지지 않기 위해 신념을 세웠고 신념이 충돌하여 사회는 혼돈에 빠진다.
웹소설, 『디에스 이라이』는 불안한 인물들을 충동질한다. 악을 응징하는 것을 천상의 임무라고 표현하며 분노가 향할 방향을 정한다. 무력감을 느끼던 사람들은 이러한 메시지에 분노를 충전하고 서로를 더욱 세심하게 검열하며 날을 세운다. 칼날은 서로를 찔러 죽인다. 후반부에 웹소설 작가는 모방범죄라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반성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디에스 이라이』 모방범죄 사건은 한차례 폭풍이 일 듯 사회를 휩쓸다가 지나간다. 살아가는 이상 범죄는 계속해서 일어난다.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짓을 하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때마다 우리는 신의 위치에, 심판관의 위치에 서서 그들을 응징하고 싶을 것이다. 절대 권력이 만들어 낸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무기력과 분노를 반복한다. 작가님의 깊은 통찰이 엿보이는 소설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분노는 과연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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