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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대한 탐구는 밤사이 일어난다

김유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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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멸시로 인한 종말, 멸망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살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행위이다. 그러나 자살이 한 인간을 온전하게 파괴하는 가장 극단에 있는 행위냐고 한다면, 여기 그 이상의 파괴가 있다는 것을 소설은 생생히 증명한다. 자기 멸시로 인한 사건 전개는 자살보다 더 극심한 자기 파괴적 종말을 보여준다.

 독자에게 작가가 이를 보여주는 데 필요한 배경은 단지 하룻밤과 타인의 집, 그뿐이다. 집약적으로 어느 밤, 몇 시간과 한정된 공간 만으로 독자를 이야기 속에 빠트린다.

 이 소설의 도입으로 적확한 단어와 의도된 연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낯선 분위기로 주목시키며,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 어렵고, 내용과 부합하는 어휘들은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도입은 소설의 상당 부분을 요약한다고 볼 수 있다. 꿈에서 손바닥에 난 구멍, 그것을 보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초조와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곳에서 튀어나온 검은 물체, 이것은 밤사이 일어난 사건으로 몸속에 있다가 손바닥의 구멍에서 튀어나온 그 물체의 실체에 닿는 것이, 이 소설이 가겠다는 지점임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스스로를 멸시하는 태도로 대하고 있다. 그런 멸시는 주인공 혼자서도, 스스로를 멸시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정황으로 알 수 있다. 방안에서 하는 행동, 방 안의 분위기, 사유만이 있을 뿐 인물은 설명하지 않는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종말, 끝이라는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 주제에 대해 독자가 더욱 생각하도록 만드는 점이다. 먼저 사십구 일이라는 상징적 사용, 주인공과 '은지'라는 두 인물 대화에서 나오는 '우린 오늘로 끝이니까.' 같은 세기말 감성의 의미심장한 말. 직접적인 단어를 말하지 않아도 끝날 것만 같은 긴장감. 이 모든 것이 결국 '종말'을 가리키고 있다. 하룻밤 불에 달려들다가 사라지는 부나비 같은 삶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형의 사고 소식과 손을 다쳐 피를 흘려 붕대를 하고 들어오는 여자. 그들을 통해 주인공 내면의 멸시가 어떻게 자랐으며, 자라는지 정보를 제공한다. 그렇게 하여 소설은 주인공 내면에 각인된 것을 확실하게 함으로써 뒷부분에 독자가 충격적이면서도 그 충격이 뜬금없지 않고 개연성을 갖추도록 하였다. 독자에게 인물의 '동기'를 명확히 보여주는 게 중요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타인에게 한 인간이 받은 멸시들이, 또다시 타인에 대한 멸시로,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게 자기를 향한 멸시가 되는 하룻밤의 과정. 예측되지 않고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소설은 독자에게 진정한 한 인간의 종말, 그로인한 세상의 종말이라는 것을 탐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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