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는 소설을 창작하고 가르치는 AI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의 배경인 미래, AI가 예술 창작의 온전한 주체가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본다. 예측컨대, AI와 인간의 예술은 별도의 장르로 구분될 것이다. 작가는 인간이 쓰는 소설을 휴먼 장르라 상정했다.
주인공 AI는 인간을 대상으로 소설을 가르친다. 인간이 창작한 소설은 소위 휴먼 장르에 속한다. 주인공 관점에서 인간의 소설은 AI의 창작 알고리즘 내에서 모두 예측이 가능한 설정과 주제일 뿐이다. 더 이상의 낯섦과 새로움이란 없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철저한 거리 두기를 통해, 주인공인 AI의 입장에서 소설(예술)을 향한 인간의 처절한 고뇌를 마주할 수 있었다.
휴먼 장르에 목을 매는 인간들은 말 그대로 후지다. 인간이 창작한 소설은 전혀 낯설지 않다. 자신들의 감성에서 추출했다고 하지만. 너무 유치하고, 너무 지루하고, 너무 징징거린다. 작가든, 독자든, 습작생이든 마찬가지다. 오롯이 인간의,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쓰인, 휴먼 장르라는 소설 또한 후지다. 인간들은 감성 운운하며 종이책을 고수한다. 정말 골동품 같은 존재들이다.
대충 이러하다. 웃프지만 조목조목 반박할 수만은 없다. 그런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인간 본연의 ‘후짐’이 반전의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아마, 소설을 창작하는 ‘주체’에 대한 역발상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체의 비틀림은, 주체가 소유한 언어에 대한 비틀림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언어는 무엇인가? 소설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예술은 무엇인가? 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예술을 하던 AI가 요리하는 AI로 기능을 달리하는 부분이었다. 이 지점은 마치 환생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를 통해 삶과 예술에 대한 절묘한 지점을 잘 묘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설정으로부터 어떤 경로를 거쳐 심도 있는 주제로 나아가는지. 한편 독자에게 재미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가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무엇보다 언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창작자로서 언어를 생산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많은 공감이 갔다.
삶에서 예술은 왜 필요할까?
이러한 화두는 결말에 이르러 무한 확장되기에 이른다. 개인적으로는, 글 전반에 던져진 화두가 결말 부분에서 좀 더 수렴되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AI라기보다 한 개체에 가까운 존재의 예술적 세계관을 엿보게 되었으니, 그것이 그러한 한 존재의 삶에 있어서 어떠한 필연적 요소를 갖는지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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