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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 있음이 쏟아져 내려, 어느 존재로 완성되었다

minimum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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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배제했으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마마, 킴>은 실존적 주제에, ‘나’의 이야기로 일인칭 시점을 채택했음에도, 독자로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자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이야기는 여러 ‘너’를 통해 나에게 가닿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무척 댄디한 도구들과 특색 있는 인물들을 징검다리 삼아.


‘나’란 존재는 어떻게 발산하는가, 내뿜는가. 주인공은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결혼, 직업, 남녀, 부모, 문화, 유교, 위계질서 등 여러 사회적 제도가, 주인공 김가영에게는 그저 이상했다. 비문증과도 같은 의아감으로. 허나 그런 의아감이 그녀의 삶에 커다란 비중이 있지는 않았다.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일 터이다. 모르고 지나친다면, 딱히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닌 그런 느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수긍한 채 살아간다.


김가영에게 그런 ‘이상함’은 두 번 선명해진다. ‘김가영’이라는 같은 이름의 두 사람을 만난 일이다. 주인공 김가영은 청소년기에 만난 ‘김가영’에게 크게 동요했다. 반발심, 그리고 열정이었다.

허나 설마흔에는 달랐다. 무신경과 허무. ‘나’는 유일무이하지 못하고, 그것은 온당하다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 ‘이상함’이 두 번째 김가영의 ‘사라짐’으로 다르게 선명해진다. ‘비어 있음’에 대한 감각. 주인공 가영은 그것을 ‘공물감’이라 칭한다.


그녀는 뭐가 이상했을까. 의아했을까. 독자로서 추측해 보건대, ‘타인과 제도만으로의 증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인공 김가영은 삶으로 꾸준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왔다. 허나 그것은 ‘번역사’라는 그녀의 직업과 마찬가지로, 주관을 최대한 배제한 타인과 제도를 통해서였다. 남으로 내가 서고, 남으로 내가 행위하고, 남으로 내가 생각하고. ‘나’는 비어 있던 것이다. 그런 비어 있음이 두 번째 맨땅의 헤딩 김가영의 사라짐으로, 이물감에서 공물감으로 진화했다고 해석해 본다.


타인으로 완성되는 삶, ‘나’가 비어 있는 삶, 때문에 상처받고, 상처 주는 삶. 허나 그것이 주인공뿐이랴. 남편을 잃고 그의 차를 타고 다니는 어머니도, 미네소타 출신으로, 동향 사람 중 아무도 모르기에 광양을 선택한 마마 킴도, 나머지 두 김가영도 똑같다. 모두 제대로 된 정체 없이, 공물감과 함께 거한다.


그런 세 인물이 소설의 주 배경이 되는 마마 킴의 카페에서 만난다. 속의 장면도, 대화도, 서로를 연결하는 방식도, 아주 절묘하며, 댄디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를 위로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쿨하게 건넨다. 아마 서로의 ‘공물감’ 그대로를. 그런 ‘건넴’이 합주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작가의 솜씨가 대단하다. 도구의 사용이 세련되었다. 모두 직접 읽고 그런 합주를 느껴 보면 좋겠다.


종국에는 여러 인물의 ‘비어 있음’ 그 자체가 독자인 내 앞에 쏟아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보랏빛 비처럼 쏟아지는 그 ‘비어 있음’은 독자인 내게 말하고 있었다. 널 아프게 하려던 게 아니라고, 서로의 ‘비어 있음’은 서로에게 고통을 주려던 게 아니라고.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독자인 나를 포함한 인물 모두가 합일되니, 주인공 ‘김가영’과 엄마, 마마 킴 셋의 존재가 노래 <Purple Rain>과 함께 제각각 독창적으로 발하는 듯했다. ‘완성’이란 말을 작가가 좋아할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는 무언가가 완성된, 낯선 아우라로 다가왔다.


‘나’란 어떻게 발산하는가. 내뿜는가. 비어 있는 서로의 소통,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지각, 그러다 이따금 ‘나’가 하는 의역의 하모니가 아닐까 싶다. 작중 <Emanate> 작품처럼, 모작 끝에 ‘나’가 태어나듯이.


작가만의 아이러니가 낯설다. 독창적이고, 댄디하다. 없음으로 있음을 직조해 나가는 방식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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