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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든 갈 곳이 필요해... 내가 있는 곳은 예비공간

박은비 202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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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몇 년간 히키코모리였다. 병원을 가거나 남자친구를 만날 때를 제외하고는 일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최선을 다했던 직장생활에서 처참한 적응 실패를 겪었고, 그 충격은 실직으로 이어졌다. 사람다움을 잃어버린 채 방에 갇혔다.

 

방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나갈 수가 없었다. 어거지로 방 밖으로 나가도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진정제를 입에 털어넣고 심호흡하기 일쑤였다.

 

처음에 엄마 아빠는 나를 한심스럽게 생각하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이러다가 죽을까 봐 매일 방문을 열어 내 생사를 확인하셨다.

 

죽은 듯이 자고 있으면 코에 검지 손가락을 가만히 올려보시기도 했다. 정말이지 암울한 시절이었다.

 

 

방에 갇힌 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SNS였다. 나는 주변인들의 SNS를 염탐하며 열등감을 채워나갔다. 동창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결혼을 한 친구도 있었고 승진을 한 친구도 있었다.

 

내 자리는 이 곳, 고작 몇 평 남짓한 작은 내 방 안. 이 소설 속 주인공은 공격적으로 좋아요를 눌렀다면, 나는 좋아요를 절대로 누르지 않았다. 스크롤, 스크롤, 내 밑바닥을 향해 하루종일 스크롤을 내릴 뿐.

 

점점 밀폐된 곳으로 나는 내몰리고 있었다. 숨을 쉬기 어려운 나날들이었다.

 

 

 

그런 내가 히키코모리 생활을 청산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가상의 회사생활을 하는 청년모임활동과, 남자친구의 아르바이트 청탁이었다.

 

가짜 회사생활 놀이나 간단한 아르바이트조차 할 힘이 없을 정도로 나는 망가져 있었지만, 다만 내가 가장 간절했던 것은 하나였다.

 

'어디로든 갈 곳이 필요해...'

 

가상의 출근을 하고, SNS에 출근도장을 찍고, 오늘 하루 무언가를 주절주절 끄적였던 '업무 증빙'을 하고, 가상의 퇴근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댓글을 달아 칭찬해준다. 간단한 규칙이었다.

 

그 규칙을 3달 동안 지키면 되었다. 처음에는 '이딴 게 무슨 소용이지?'라고 생각했지만, 분명히 나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용기가 생겼다. 남자친구가 부탁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비난할 것 같다는 불안과 공포는, 따뜻한 햇볕과 부드러운 초여름의 선선한 바람에 사그라져버렸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내 긴장해서 손을 떨고 말을 더듬었지만 끝까지 해냈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SNS를 자주 하지는 않게 됐다. 주변인들을 염탐하는 일도 없어졌다.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떻게 나왔는지. 내 예비공간은 어떤 곳이었는지.

 

소설 속의 예비공간의 벽은 무너져내렸다. 주인공이 준비되지 않은 타이밍에 그런 사고가 발생해서 애석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준비가 되어도 힘든 '탈출'을 강제적으로 하게 되었다니. 그런 마음으로 이입하며 읽자 소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오늘날, 나처럼 어딘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느낀다. 그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서 갇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로든 갈 곳이 필요해. 주인공에게는 그게 예비공간이었던 것이리라. 

 


 

언젠가, 준비가 되면, 스스로 '탈출'할 수 있는 것이 예비공간의 본질이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하며 독서를 마친다.

 

단정하면서도 정확한 문장으로, 예비공간으로 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잘 담아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작품을 완전히 오독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오독도 꽤 괜찮다고 제멋대로 생각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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