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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아야 하나?

구름 202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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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독서를 할 때, 작가의 성숙한 사유 그대로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운은 무엇인가. 정리할 수는 없지만, 결과에 따라 좋고 나쁨이 정의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게 제아무리 모호하더라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답은 반대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그게 좋은 쪽의 상상이든, 나쁜 쪽의 상상이든, 그 자체는 어둠인지도 모른다고, 이 소설은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그저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고.


<운이 좋았네요>는 사고를 시작으로 긴장감 있게 뻗는 서사와 적절한 반전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었다. 아이의 사건을 중심으로, 그 내막의 가능성을 나열한다. 장인, 아내, 주인공, 장모, 돌보미 등은 서로를 탓하고 있다. 네가 그랬으면, 그때 그랬다면, 하며. 작가는 그런 나열의 공법으로 의식을 뚜렷이 하다가, 반전으로 주제를 관철시킨다. 끝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와 주인공이 동일시되며, 하나의 우아한 이미지로 근사한 형상화를 달성한다.


불행을 마주한 인간이라면 이런 수많은 가정의 나열을 경험하지 않은 이가 없을 터이다. 그때 내가 이랬다면, 그때 누가 그랬다면, 하늘이 어땠다면, 운이 좋았다면, 지금이 조금은 나았을까, 하고. 그런 가정은 미련과 다를 바 없이 유해하다. 아이 혹은 트럭 기사의 끝처럼, 인과는 결과에 의존할 뿐이니까.


그렇다면 그런 삶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낚싯대를 던져 놓고 앉아 있던 아버지의 이미지가 강렬히 남는다. 그는 정적 속에서 무언가를 헤아리고 있었던 걸까. 


그건 어떤 불확실성을 대하는 삶의 태도를 은유하고 있지 않나 가늠해 본다. 운이 좋았다, 운이 나빴다, 로 정리되는 삶이 어디 있는가. 과거 가정의 상상으로 갉아 먹히는 현재를 누가 원하겠는가. 가늠하고, 상상하고, 운 따위로 슬퍼하기에는, 우리 모두 실천하는 삶이 치열하다.


끝에는 독자인 나도 주인공 찬영처럼 비로소 궁금해졌다. 어둠 속 아버지가 보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작가에게 제대로 전달받았다. 배울 수 있었다. 어떤 지나간 불확실성에 의존하기에는 삶은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아름다운 사유가, 소중한 위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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