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기 위해
멀리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그것은 당장이라도 현실을 덮쳐올 것처럼 으르렁거린다. 실제로 그런 것도 아닌데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곤 당장 죽을 것처럼 뒷걸음질 쳐서,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도망친다. 그것은, 곧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이어진다.
살기 위해서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고
살기 위해서 공부하고
살기 위해서 대학 가고
살기 위해서 취직하고
살기 위해서 사랑하고
살기 위해서 결혼하고
매 순간 이루어지는 모든 생각과 행위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들은 또 다른 파도가 되어 내 의식에 파고를 일으키며 거세게 출렁인다. 생각은 생각을 일으키고, 행동은 또 다른 행동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 것일까.
소설 <멀리서>는 잔잔한 삶 속에 끊임없이 밀려드는 생각과 행위에 대해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첫 도입부에서 건물의 외벽에 모자이크로 그려진 바다와 고래 장면이 나온다. 멀리서 봤을 땐, 분명 바다와 고래 같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버린 얼룩처럼 보인다. 이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었는데,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것 같았다. 그로 인해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질 수 있었다.
이후 전개되는 내용은 현지의 내적 성장에 관한 것이다. 성장 서사는 그간 많이 접해 왔지만 이 작품만이 갖는 의미는, 겉으로 보이는 성장 서사와 동시에 ‘자기답게 살지 못하면 무의식도 거든다’라는 작품 속 문장처럼, 무의식 저변에 깔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내적인 무언가’를 진실되게 건드린다는 점일 것이다.
‘살기 위해서’
구직 사이트를 떠도는 현지, 에어컨 설치 보조기사와 배달일을 일하는 윤재, 공사장과 주중 까페 알바를 하는 승수, 그리고 극단의 부활을 꿈꾸는 오 감독.
그들은 핍진한 삶의 애환을 지닌 채, 일상을 표류한다. 그러던 와중에 그들은 대학로 펍에서 다시 만난다. 이 장면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인물과 상황, 인물들 간에 대화를 디테일하게 묘사하면서, 일상의 애환을 담담하면서도 건조하게 그려내는데, 그로 인해 독자적 공감대가 훨씬 고조될 수 있었다.
결말에 이르러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던 현지에게 어떤 변화가 온다. 그것은 단순히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명분을 요구한다. 그 해답을 작가는 소설의 제재인 ‘연극’이라는 요소를 통해 제시해준다.
심장이 닿는 곳, 깊은 무의식 속에 잠든 ‘힘찬 고동과 같은 꿈틀거림’, 그것은 어쩌면 희망이라 불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근거 없는 희망을 감상적으로 늘어놓는 작품이 아니라, 우리를 그러한 가슴 떨림의 자리로 개연성 있는 경로를 통해 데려가 주는 이야기.
삶의 진실이 잘 그려진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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