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기억이 찾아올 때
기억이 찾아온 건, 우연이었다. 불쑥, 예기치 못하게. 그것은 외삼촌이 제의한 알바를 통해서였다. 그렇게 ‘나’는 공주에 사는 공할머니를 일주일 간 보살피기 위해 공주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 대가는 공짜 백두산 여행.
<왕릉에서 보낸 일주일>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 초반에, 외삼촌의 입을 통해 공할머니가 처음 언급되었을 때 언뜻 거리감이 느껴졌다. 친외할머니라기보다는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어떤 할머니’인가? 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선명하다기보다 그냥 지나치게 되는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이후 소설을 다 읽고 난 이후에야, 그것이 마치 흙 속에 전모를 숨긴 채 지표면 위에 아주 작은 단서를 드러낸 지층 속 유물과도 같았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사가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독자를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 버렸던 낯선 느낌의 진원지로 데려간다. 처음 ‘나’의 관심은 공할머니보다는 백두산 여행에 꽂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예기치 못한 기억의 시공간을 여행하게 된다.
세상과 단절된 공할머니의 집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기억의 전모. 그것은 공할머니의 의도도, 나의 의도도 아니었다. 기억 스스로가 ‘나’를 찾아온 듯. 기억의 지층 속에 자리 잡은 망각된 아픔과 슬픔이 기억의 지표면 위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날의 일을 공할머니도 기억하고 있을까.
어쩌면 공할머니의 기억이 온전치 않다는 사실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만일, 기억이 온전하다면 공할머니도, 나도 서로를 다르게 대했을지 모른다. 이해의 지점에 이르는 것은, 늘 대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오랜 아픔과 슬픔은 언어로 헤집어 놓을수록 그 빛깔만 보다 퇴색할 뿐이니.
한 사람의 생과 기억을, ‘왕릉’이라는 소재에 빗대어 기억의 주제로 엮어간 점이 낯설고 재미있었다. <왕릉에서 보낸 일주일>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음 떠오른 건 인디애나 존스 같은 으스스한 무덤 속 이야기였는데- 그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소설은 그보다 훨씬 고요한 곳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차분하게, 그러나 깊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
문득, 떠오른 기억이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외할머니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외할머니댁에만 가면 시간이 정지된 듯한, 소파에 앉은 외할머니가 마치 눈만 끔벅이는 정물처럼 여겨진 적이 있었다. 소설을 읽으며 그때의 느낌이 되살아오는 듯했다.
내게도 기억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