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학교폭력은 오래된 문학 작품의 소재이자 주제로 활용되어 왔다. 작가로서 나도 학교폭력을 소재로 쓴 소설이 여럿이었고(특히 학창시절에).
늘 기대하게 만드는 이시경 작가가 그리는 학교폭력의 내밀한 현실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거리낌 없이.
이 소설의 공간을 좁히고 좁히자면 '광안리 해변의 한 구덩이 안'일 것이다. 이 소설은 그 구덩이에서 시작되어 '다른' 구덩이에서 끝이 난다.
하얀 티셔츠 학생이 누운 광안리 해변의 구덩이와 주인공 '나'의 마음 속 구덩이는 서로 대응되는데, 이 소설의 매력은 그 대응도 대응이지만 '광안리 해변'이라는 탁 트인 아름다운, 즐거운 공간을 다른 인물들로 배치함으로써 전혀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데 있다. 이는 '가장 친밀한 공간이 낯선 공간이 된다'는 공식의 또 다른 변주이다.
하얀 티셔츠 인물이 처한 내막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소설은 거기서 독자에게 상상과 추론의 여지를 남겨두고, '나'의 내면 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결말부에서 주인공이 의심하는 것처럼, 실제로 거기에 구덩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물며 그 구덩이를 '누가' '어떻게' '왜' 팠는지, 만들었는지는 영원한 의문으로 남을 것이다.
언뜻 아무렇지 않아보이는 일상에 미세한 균열이 일 때, 한순간 와장창 무너지고 마는 인간 내면의 허약함을 엿보이는 동시에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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