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상담사한테 화가 나서 한 번 덮었다. "집안일보다야 밖에서 돈 버는 일이 훨씬 힘드니까요." 부부관계 때문에 온 여자한테 할 소린가. 남편은 오지도 않았는데 "한 걸음 내디디신 거예요" 하고 칭찬받고, 이십 년을 참은 은정은 "이제 은정 씨 차례"라며 수첩 두 권을 숙제로 받는다. 그 뒤 책장에는 '부부의, 부부를 위한, 부부에 의한' 책만 꽂혀 있다. 은정 몸에 관한 책은 한 권도 없다. 제목이 왜 '몸의' 권리장전인지 거기서 알았다. 그러니 "적어도 선생님은, 하실 수 있잖아요"가 나왔을 때 속이 다 시원했다. 매주, 못해도 이 주에 한 번은 한다고 강연에서 말한 사람이 못 하는 사람한테 노력을 권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이 소설에서 이 대사가 제일 세다고 본다.
남편은 끝내 못 미워했다. 물 때문이다. "찬물 아니고 미지근한 물 맞나?" 이십 년 넘게 아내 몸에 손을 안 댄 사람이 아내가 마시는 물 온도는 안다. 이런 사람이라 은정이 더 미치는 거다. 나쁜 놈이면 욕이라도 하지. 공벌레처럼 제 무릎을 끌어안고 자는 뒷모습까지 보고 나면, 이 사람도 자기 몸 하나를 혼자 안고 사는구나 싶어진다. 은정은 곰 인형을 안고, 허공을 안고, 마지막엔 베개를 안는다. 이 집에서는 아무도 사람을 안지 않는다.
웃기기는 또 왜 이렇게 웃긴지. 할머니 판결에 "뭐 이런 거지 같은 판결이" 하고 벌떡 일어났다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지" 하고 자기가 참을 햇수를 계산하는 데서 웃다가 목이 멨다. 바나나빵도 그렇고. 제일 기막힌 건 위아래 집이 서로를 금실 좋은 부부로 알고 밤마다 속을 끓였다는 거다. 한 사람은 이십 년을 혼자 잤고 한 사람은 혼자 산다. 자기한테 없는 게 상대한테는 있다고 믿고 둘이 해머로 벽을 치고 있었다.
마그넷에서는 김이 샜다. 그게 배관이었다고? 그런데 "낡고 오래된 배관"이라는 말이 어디서 본 것 같아 첫 장으로 넘겨 보니 "낡고 오래된, 좁고 막힌 통로"가 있다. 은정의 몸이다. 갈 데 없는 물이 벽을 두드리는 집이 처음부터 은정이었던 거다. 해머를 시켰더니 상자에서 '해머링'이 나오는 데서는 작가님이 좀 얄밉게 웃고 계신 것 같았고.
그리고 '정당하게'. 예민하다는 소리, 복에 겨웠다는 소리를 이십 년 들은 몸한테 소설이 처음으로 편을 들어 준다. 윗집 여자의 "혼자가 편할 때도 있어요"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결말이었다.
하나만 여쭙는다. 내내 '여자'라고만 부르다가 마지막 두 문장에서만 '그녀'라고 쓰셨다. 일부러 그러신 건지.
해결된 건 하나도 없다. 남편은 여전히 작은 방에서 코를 골고 배관도 그대로다. 그런데 은정이 걱정되지는 않았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