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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의 반복된 삶

박숲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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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의 반복된 삶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죽을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인간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희망을 놓는 순간 삶의 가치와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바다로 나간 행위는 죽음의 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고래를 찾아서>이 고래를 만나기 위해 크루즈선을 타는 행위 역시 희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다. 박에게 포경선을 타는 게 유일한 꿈이었던 시절은 거침없이 파도를 가르는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박은 유일한 꿈을 거세당한 상태에 놓여 있다. 포경이 금지되어 더 이상 고래를 잡는 꿈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그에게 포경금지는 희망의 싹을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 희망을 잃은 박이 할 수 있는 일은 크루즈선을 타고, 멀리서나마 고래를 바라보며 찬란했던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다. 그러나 고래는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희망을 쉽사리 잡을 수 없음을 암시한다.

 

또한 박에게 고래는 과거의 꿈이자 숨진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 애타게 고래를 찾아다니는 것이 과거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되찾기 위한 꿈 안에 아내라는 존재가 자리한다. 즉 고래를 찾는 행위는 아내와의 소중한 기억들을 낚아 올리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고래를 만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그의 가슴은 갈증으로 점점 끓어오른다. 마침내 크루즈선에서 고래다! 고래가 왔어!” 참고래떼를 발견하고 고래 만세를 외치는 박. 그의 목소리는 푸른 바다 위로 물방울처럼 공허하게 부서지고 만다.

 

이로써 그가 불법 포경선을 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이 성립한다. 과거 황 포수 아들의 유혹을 그는 떨쳐내지 못하고 결국 불법 포경에 나선다. 산티아고 노인이 혼자서 당당하게 희망을 낚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면, 박은 절망의 끝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서의 고래사냥을 나선다. 그에게 불법 포경의 시간은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없다. 고래 떼와 마주한 그는 이제야 삶의 가치를 얻는 순간이다. 그가 밍크고래의 몸에 작살을 꽂을 때는 꿈에 다가선 자들의 희열과도 같은 환희를 맛본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꿈이란 어떤가. 한 겹의 파도가 포말로 부서지면 또 한 겹의 파도가 몰려오는 이치와 같다. 그가 그토록 소망하던 고래를 손에 넣는 순간 꿈은 한 겹의 포말로 부서지고 만다. 그렇다 해서 그는 절망 앞에서 찾은 희망을 싹뚝 잘라낼 수 없다. 불법 포경 단속의 해경에게 쫓기면서도 그의 손에 끝까지 시퍼런 갈고리를 들고 붉게 물든 바다를 지치지도 않고 노려보는 것이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고래를 찾아쉼 없이 바다 위를 누비는 존재다. 돌덩이로 전락한 지구 위에 앉아 한 줄 남은 리라의 현을 소중하게 매만지고 있는 눈 먼 여인*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작가는 포경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박을 통해 단단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안겨준다.

 

 

*조지 프레데릭 왓츠, 희망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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