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있었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후일담으로 그린 소설이다. 그때 방화 용의자가 천주교 교회로 피신했다. 신부가 이들을 보호하고, 이런 신부를 법은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이 사건이 있을 때 군대에서는 군종신부로 하여금 이 사건에 대한 사병 교육을 명령했다. 군종신부는 과연 이 사건을 일반 장병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창녀 같은…….
무심히 지껄이다가 나는 그 욕설이 얼마나 당찮은 것인가를 깨닫고 그만 입을 다물었다. 계집애 때문에 생긴 일이긴 하지만 계집애가 잘못한 일은 없었다. 어쩌면 그녀도 사진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니면 늘 당하는 일이어서 쉽게 잊어버렸는지도.
어제로 열아홉 번째로 맞은 사단 창설 기념행사의 피크는 역시 중앙문선대의 위문 공연이었다. 계집애가 마이크를 잡았을 때 병사들은 거의 광란에 가까운 환성을 질러댔다. 벗어라, 벗어. 아주 홀랑 벗고 벌리라니까! 계집애는 아래위로 속살이 그대로 비치는 잠자리 날개 같은 천 조각 두 개를 걸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가 사진을 찍긴 했지만 성격이 별난 탓인지 나는 그런 것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군대에서 맞는 명절이나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은 아직 영내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내게 철조망 속에 갇혀 있다는 사실과, 바깥 세계에, 친구들이며 가족들에게까지 소외감만 느끼게 할 뿐이었다. 가설무대 아래를 어정거리며 반라의 무용수와 가수들의 사진을 찍노라면 나는 그런 내 자신이 가련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우리 앞에 옷을 벗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위로받는 게 없었다. 오히려 저희가 우리의 우상인 양 행동하는 그릇된 허영심의 희생물이 될 뿐이었다.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을 발표하며 데뷔. 창작집으로 『첫눈』 『그 여름의 꽃게』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나무』 『워낭』 『벌레들』(공저) 등 여러 작품이 있다. 동리문학상, 남촌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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