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오대산 월정사로 진입하는 지점에서 진고개로 넘어가는 구간에 있는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보면서 구상한 소설이다. 내가 오대산을 오간 횟수는 어림짐작으로도 헤아리기 어렵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락거렸으니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갈 팔자를 모면하려 무시로 들락거린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진고개를 넘어가는 과정은 오를 때나 내려갈 때나 아슬아슬한 묘미가 있는데 그 길을 숱하게 오가며 이렇게 끔찍한 인간세상의 참상을 떠올렸으니 수려한 오대산과 소금강 산세에 두루두루 미안한 마음이다. 쓸 때도 가슴이 아팠지만 쓰고 난 뒤에도 내구력이 생기지 않아 읽을 때마다 진저리를 쳐대곤 했다. 이런 소설을 왜 쓰나, 이런 소설을 왜 써야 하나. 참으로 이런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성이 말살당하는 세상에서 행복의 척도가 오직 돈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토 나올지 모르니까.
“술맛 떨어지게 징징거리지 마.”
말을 마치고 나서 여자는 다시 잔을 비웠다. 순간, 남자가 고개를 들고 다소 화가 난 듯한 어조로 물었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이유를 말해. 무엇 때문에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온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계획이 없었잖아. 나만 데려온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키, 니키, 미키까지 트렁크에 넣고 왔으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이유?…… 개가 네 마리라는 걸 알려 주기 위해서 왔다. 왜?”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말하고 나서 여자는 잔을 비웠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앉아 있던 남자가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젠 나까지 개 취급하는 거야?”
“넌 개새끼들을 사람보다 더 위하잖아. 그리고 네가 개보다 나은 게 뭐가 있니? 설마 지금 이 자리에서 네가 남자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여자가 입 언저리를 일그러뜨리며 여전히 조롱조의 웃음을 흘렸다.
“내가 남자가 아니면……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당신은 뭔데? 당신이 여자인 것처럼 난 생물학적으로도 남자고 법적으로도 남자야. 도무지 남자가 아닐 수 없잖아.”
“웃기고 있네. 그건 실체가 아니라 허울이야, 허울. 네가 남자라면 도대체 무엇으로 남자인지 이 자리에서 증명해 봐.”
“남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당신은 날 뭘로 생각하는데?”
“넌 애완견과 동급이고 기생충과 동격이야.”
짧고 단호한 어조로 여자가 못을 박았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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