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칼
작가의 말
아름다운 열혈남아를 위하여
이재명李在明이라는 이름을 꽤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다. 스물둘에 민족반역자를 처단하기 위해 거사를 일으키고, 스물셋에 교수형에 처해진 아름다운 열혈남아. 내가 그에게 사로잡힌 것은 단지 스물둘, 스물셋이라는 나이 때문이었다. 그 나이가 나를 여러 번 울렸고, 그 나이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절망했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다운 열혈청년이 우리 민족의 참담한 역사 속에 파묻혀 있었을까.
이재명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의 초상을 만들어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단 한 명의 후손도 없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기록과 자료는 참담할 정도로 부실하고 부정확했다.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결국 엉뚱한 일에까지 손을 대고 말았다. 월권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손을 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의 자료들을 비교 검토하고, 그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는 일에까지 손을 댄 것이다. 미안하지만, 미안하게도, 미안하다만, 그렇게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열혈청년이 어째서 죽은 뒤까지도 이리 외롭고 고독하게 방치되어야 하는가.
등장인물들이 모두 평안도 출신들이라 사투리 구사를 시도하다 포기했다. 현재의 우리 언어감각으로는 지나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괄호에 뜻을 풀어주어야 할 정도로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가 많다는 것, 그리고 다루어야 할 내용이 어차피 민족정서에 호소해야 할 것들이라 특정 지역의 사투리에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는 것―그것이 사투리 소설 혹은 평안도 소설을 만들지 않은 나름대로의 이유이다.
아름다운 열혈남아 이재명과 함께 보낸 시간은 참 행복했다. 나는 100년이 넘은 그의 오래된 흑백사진을 복사해 벽에 걸어놓고 작업했다. 그것이 이 책의 표지가 된 사진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인상과 단호한 의지가 돋보이는 사진…….
작품은 끝났지만 그는 계속 나와 함께 머물 것이다. 그가 머무는 게 아니라 그의 정신이 한 자루의 칼이 되어 나를 스스로 경계하게 만들 것이다. 그는 뜻으로 칼을 쓰고 칼로써 뜻을 펼친 사람이다. 요컨대 그가 곧 칼이라는 말이다. 짓물러터지는 세상, 나도 그처럼 칼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