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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마을

소설 중편

박상우 2021-10-13

ISBN 979-11-92011-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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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아주 오랜 동안 나는 세 명의 역사적 인물에 대해 근원을 알 수 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남이 장군, 마리 앙투아네트, 이재명 의사가 그들이었다. 남이장군은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하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고, 이재명 의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한 인물이다. 인생을 비참하게 마감했다는 공통점은 그들 인생에 억울함이 많았음을 되짚어보게 한다. 근원을 알 수 없이 나를 사로잡고 자신들의 인생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그들의 에너지를 물리치지 못한 채 나는 몇십 년 동안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탐구하고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좌우한 놀라운 양극성을 발견하고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그와같은 운명적 양극성이 내재돼 있음을 깨칠 수 있었다. 그러니 그들 셋의 극단적 양극성을 표본삼아 독자 여러분의 인생에 운명적으로 드리워진 양극성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여정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내 운명의 양극성은 <성(聖)-속(俗)>임을 밝힌다. 그것이 내 평생의 화두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1755~1793).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행실이 나빴으며 대혁명 때 반혁명파의 중심으로 활약하다 단두대에서 반역자로 처형되었다.

이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어느 인명사전의 기록이다. 거두절미하고 그녀의 행실이 나빴다는 표현을 읽으면 소름이 돋는다. 행실이 나쁜 여자, 그리고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여자.

그녀는 1793년 10월 16일 콩코드 광장에서 목이 잘려 죽었지만 그녀의 삶에 얽힌 온갖 추문과 괴담은 2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그녀의 목을 잘라 내고 있다. 후대의 사가들이 아무리 기를 써도 당대의 악의는 지워지지 않고 더욱 볼썽사나운 얼룩을 만든다.

이런 지면을 빌어 그녀의 삶이 얼마나 억울하게 왜곡 당했는가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나는 역사가가 아니고 역사가라고 해도 이렇게 더러운 진흙탕에서 진실을 밝히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러운 색정광, 남녀추니 왕비, 남의 자식을 낳은 오스트리아의 창부, 추기경과도 붙어먹고 시동생과도 붙어먹은 암캐……. 당대에 양산된 추악한 팸플릿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쓰레기 같은 글 한 편을 읽는 게 차라리 효과적일 것이다.

주교 : 당신의 꽃밭은 해면체 같네요. 아니 해면체보다 더 나빠요. 해면체는 물을 한껏 먹으면 더 이상 먹지 않지요. 그러나 당신의 꽃밭은 아무리 물을 자주 줘도 충분히 젖지 않아요. 물을 뿌리자마자 말라버립니다……. 당신의 꽃밭은 적도 위에 있습니다. 몹시 덥지요.

앙투아네트 : 그래서 뭐 잘못인가요? 난 원래 그래요. 내 꽃밭에는 물을 자주 뿌려 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곧 말라서 빵껍질처럼 딱딱해진답니다. 그러니 어서 올라타요……. 나 타죽겠네요…….
(주교는 그녀에게 30분 동안이나 올라타고 있다.)

파리에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금서 진열실인 ‘지옥(Enfer)'에 보관되어 있는 글이다. 같은 진열실에 보관되어 있는 『왕실의 각좆』이란 글은 더욱 끔찍하다.

이를 테면, 내게 이런 좆을 데려오는 일이 없도록 하라.
보지를 보기만 해도 황홀해서 오그라드는 좆,
욕망이 절정에 달했을 때에도
쾌락의 중심을 살짝 문지르지도 못하는 좆,
그래서 스스로 피리 불기를 즐기는 좆.

(……)

나는 단단한 자루가 쉬지 않고 무한정 움직이는 좆을 원한다.
한 번 찌를 때마다 내 사랑의 신경섬유에 물을 댈 줄 아는
성 잘 내는 손잡이가 달린 유쾌한 좆.
한마디로 기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나로 하여금 즉시 그 공격을 받아넘기게 만드는 좆.

당대의 모든 문서와 자료와 역사를 무시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내가 정리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간단명료하다. 그녀는 여자였다. 그리고 왕비였다. 그것이 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의 시기에 제물로 바쳐진 온갖 추문의 근원이었다. 그리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긴 했지만 그녀는 그 불행한 시기를 보내며 철없고 속물스럽던 여자에서 왕비로서의 위상을 당당하게 회복하고 운명의 근원을 간파함으로써 자기 삶을 완성했다. 그것이 그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의 전부이고 그것 이상 나는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십 년 동안 그녀가 나의 내면에서 끈덕지게 동거한 이유는 무엇인가.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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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한 호흡으로 키다리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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