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뜩하고 끔찍한 소설은 오직 하나의 단어를 염두고 두고 쓴 것이다. <멸시>라는 단어.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상사로부터, 동료로부터, 연인으로부터 받게 되는 멸시. 멸시를 견디기 힘들어 사람을 죽였다는 어떤 범죄자의 진술을 듣고난 뒤부터 그 어휘 속에 숨겨진 행동 양태의 무한 가능성을 되새겨보고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멸시라는 것이 능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라는 걸 뚜렷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끝내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멸시, 그것이 자살을 불러올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자살보다 더한 것, 다시말해 인생을 포기하는 자포자기적 삶이 바로 자신에 대한 멸시에서 비롯되는 건 아닌지, 아직도 나는 그것을 탐구 중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어둠에 대한 진저리도, 빛에 대한 갈망도, 그때 이미 나에게서는 허망하게 스러진 뒤였다. 그걸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그녀는 눈을 뜨고 다소 누그러진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금방 안 나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말라니…… 밤이 지겹지도 않냐?”
“지겹지 않아. 차라리 낮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
“그럼 그냥 나가. 이건 네 방식이 아니잖아.”
“상관없어. 우린 오늘로 끝이니까 이게 기념식이라고 생각해.”
“기념식치곤 정말 더럽군.”
“그래, 그러니까 더럽게 해봐. 더할 수 없이 아주 더럽게 말야.”
“더럽게 하지 않아도 어차피 우린 더러워.”
“우리라고 말하지 마.”
“그럼 어떤 말을 듣고 싶은 거지?”
“다 필요없어. 그냥 날 창녀라고 생각하면서 해봐.”
그래 좋다, 하고 이를 악물고 나는 창녀의 몸 속으로 불쑥 들어가버렸다. 그러자 지상의 모든 어둠과 지상의 모든 병마와 지상의 모든 악덕이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자궁, 그것을 잔혹스럽게 짓이겨버리고 싶다는 충동으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서너 번 굴신한 뒤부터 나는 사뭇 가학적인 흥감을 느끼며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삐이걱, 그때 밖에서 나무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뚜벅뚜벅하는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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