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관령 아래 깊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조선시대의 향약이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입니다. 그래서 마을의 촌장 어르신도 계시고, 설날이나 추석 명절의 차례와 성묘도 옛날 방식으로 지냅니다.그 마을의 소년이 자라서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는 우리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는 방식은 달라도 어느 지점에서는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에서 살든 사람들은 밥을 지어먹고 살았다. 여러 곡식 중에 쌀이 가장 귀한 양식이었다. 만물의 가치가 쌀과의 비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저자거리의 모든 물건이 쌀과 비교하여 가격이 매겨졌다. 설령 돈이 있어도 돈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시절이 더 많았다.
그러던 시절 강원도의 선비가 서울로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무엇으로 노잣돈을 대신했을까. 중간중간 주막이든 민가에서 밥도 먹어야 하고, 잠도 자야 하고 짚신도 갈아신어야 하는데, 이때 밥값과 하룻밤 묵어가며 바꾸어 신는 신값은 무얼로 계산했을까. 돈이라는 게 있기도 했지만, 하루 식사 한 끼에 엽전 얼마 하고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처럼 큰돈을 내주면 잔돈을 거슬러주는 거래 방식도 없던 시절, 그런 계산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때그때 먹은 밥값이나 술값을 쌀로 계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지만, 그러자면 시골 선비들이 서울로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저마다 등에 쌀 한 가마니씩 지고 다녀야 하는데, 또 과거시험을 보고 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자면 그때에도 노자로 그만큼의 쌀이 필요한데 사극을 보든 뭘 보든 지게에 쌀가마니를 지고 다니는 선비는 본 적이 없다.
그러면 그 시절엔 무엇으로 그때그때 먹고 신세진 밥값을 계산했을까.
1988년 「문학사상」에 「낮달」을 발표하며 데뷔. 창작집으로 『첫눈』 『그 여름의 꽃게』 등이 있고, 장편소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수색, 그 물빛 무늬』 『아들과 함께 걷는 길』 『나무』 『워낭』 『벌레들』(공저) 등 여러 작품이 있다. 동리문학상, 남촌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수상
lsw8399@hanmail.net
125세 할아버지 이야기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선비는 밥값을 어떻게 계산했을까 눈칫밥의 서러움 설날을 기다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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