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등산로 초입의 소프라노 색소폰 버스커는 내가 발견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나에게로 들어와 버린 것이다.
색소폰이든 기타든 바이올린이든 버스커의 악기 케이스는 모금함이기도 하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케이스가 버스커 곁에 가까이 있으면 다가가 돈을 넣으려 하지 않는다. 케이스가 좀 멀리 떨어져 있어야 그나마 행인이 접근한다. 나의 ‘대단한 발견’은 거기까지였다. 색소폰 케이스를 행인들 쪽으로 끌어다 놓은 것까지.
버스커도 만족하는 듯했다. 그러나 도봉산에 다시 갔을 때 버스커는 이전처럼 케이스를 자신의 발치에 두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그가 나에게 들어온 것이다. 내 깜냥으로는 쉽게 가늠할 수 없었던 차원을 그가 보여준 거였으니까. 나는 비로소 흐트러짐 없는 연주의 비밀을 알 것 같았다.
이처럼 내 안의 눈으로 본 것이 아닌, 바깥의 낯섦과 놀라움이 얼결에 나를 찢고 안으로 육박해 들어올 때, 선물을 받은 듯 설렌다.
도봉서원 터에서 천축사 가는 길로 접어들어 7분쯤 걷던가. 그곳에 허름한 옷을 걸친 소프라노 색소폰 버스커가 있었다.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긴 했어도 꽤나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 분이었다. 그에게 가당찮은 오지랖을 떨었다.
그를 그날 처음 봤던 것은 아니었다. 천축사 방향으로 오를 때 가끔 보았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무슨 곡인가를 하염없이 연주했다. 거의 외국 곡이었는데 내가 어쩌다 노래방에서 부르는 ‘내 사랑 내 곁에’라든가 ‘천년의 사랑’같은 곡이 나오면 발걸음을 멈추고 끝까지 들었다.
그러다 하루는 그에게 다가갔다. 답답해서 그랬다. 그의 발치에 놓인 색소폰 케이스가 그야말로 발치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뚜껑 열린 케이스에는 등산객이 던져준 천 원짜리 두 장과 몇 개의 동전이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까지 다가와서 돈을 건네지 않아요. 좀 더 사람들이 다니는 쪽으로 케이스를 내어 놓아야겠어요.’
물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 목례로만 양해를 구하고 색소폰 케이스를 행인들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옮기자마자 두 행인이 색소폰 케이스에 돈을 넣었다. 나는 그를 향해 보란 듯 미소 지었다. 깊게 눌러쓴 모자 그늘 속에서 그의 눈도 웃고 있었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었다.
1957년 강화도에서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로 등단했다.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 『별명의 달인』 『아닌 계절』 등과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 『라디오 라디오』 『비밀의 문』 『내 목련 한 그루』 『나가사키 파파』 『랩소디 인 베를린』 『동주』 『타락』 『새벽별이 이마에 닿을 때』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등이 있으며,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 『인생은 깊어간다』 등을 펴냈다.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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