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언어를 가지고 하는 ‘놀이’입니다. 놀이는 늘 ‘행함’을 기본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아는 놀이가 아니라 진짜 노는, 행하는 놀이만 놀이라 칭해집니다. 그런데 시는 일반 놀이와 달리 놀게 만드는 데 참여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 다 만들면 그다음에서야 향유(享有)나 훼손(毁損)이 가능해집니다. 내가 시를 만드는 놀이를 하고 싶다면 당장 독자의 자리에서 일어서 막 읽은 시를 오독(誤讀)도, 곡해(曲解)도 말고 다시 쓰십시오.
당신이 시를 읽는 건 당신이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 완강하게 닫았던 문 어귀를 살짝 비튼 것과 같으니, 제가 이 고통인지 쾌락인지 불분명한 놀이에 계속 빠지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어둑하게 저무는 시간과 그 안에서 희미해지는 기억이 아쉽고 서러워 저는 시를 씁니다. 온 우주에서 오직 유일한 당신의 시간과 기억을 존중하며, 우리는 관여(關與)의 생명으로 이 대기를 호흡합니다. 시는 그저 써지고 어찌 읽히고 다만 잊히는 한 숨결일 따름입니다.
여기 이 말은
원래 써지지 않은 내용.
우리는 마지막에 무엇을 잃을까.
빨간 플라스틱 빨대로
장미라고 쓰고
내 나름의 깊은 입맞춤,
그리고 구부렸다가
왼손 검지에 칭칭 말아
당신이라 했다
이내 빼 쓰레기통에 던진다.
가소성,
그리고 flexible
엉엉, 여기 이 말은 원래 써지지 않은
마지막은 우리에게 무엇을 되돌릴까.
1991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북극권의 어두운 밤』 등이 있음
pamc1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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