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는 자연과 인생을 표절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글을 위해 어제는 강에 나가 강물 두어 되 빌려다 문장의 독에 부었고, 그제는 산에 가서 꽃향기 서너 종지와 새 울음 한 봉지를 꾸어다가 글의 텃밭에 뿌려두었습니다. 오늘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교외로 나가 사정사정한 끝에 초록 말가웃을 차용해서는 글의 채전에 거름으로 묻어두었습니다.
평생을 이렇듯 자연을 빌어다 짓는 글 농사인데 알량한 고료라도 받는 날이면 그걸 갚을 새 없이 삼겹살에 소주를 사서 주린 입에 넣는 데만 골몰하였습니다. 이제는 자연에 진 빚을 갚으며 사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합니다만 글쎄, 그것이 어느 세월에 가능할는지요? 열심히 자연을 닮은 삶을 사는 일이 빚을 갚는 일이라 믿고 노력할 뿐입니다.
지금에 와서도 라면은 서민들이 일용하는 양식 중 하나다. 나 역시도 라면을 즐겨 먹는 편이다. 58년생인 내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라면을 먹는 셈이니 결코 적다고 볼 수 없다. 허기질 때 먹고, 적적할 때 먹고, 슬플 때도 나는 라면을 먹는다. 외국 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찾는 음식도 라면이다. 매콤한 라면 국물을 들이켜면 타국에서 먹은, 느끼한 음식 때문에 더부룩했던 속이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가시는 기분이 드는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닐 것이다. 서민 음식 중 라면 앞에 서는 것이 과연 몇이나 될까? 라면의 원조가 중국이다, 일본이다 분분하지만 그거야 어쨌든 박래품인 라면이 우리 맛의 과정을 거쳐 서민과 함께하는 보편적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여름 나는 시골집에 내려가 밤을 기다려 물을 반쯤 채운 냄비에 뜬 별에 라면을 넣고 끓여 먹었다. 또 낮에는 시골집 평상에 앉아 지나가는 구름 한 장을 냄비에 띄워 라면과 함께 끓여 먹었는데 냄새를 맡고 온 바람이 얼굴을 사납게 할퀴어댔다. 그 여름 막바지 주말에는 바닷가에서 끼룩대는 갈매기 울음 서너 송이를 따 냄비에 넣고 끓여 먹다가 바다가 흰 목젖을 내밀어 오는 통에 사리 몇 가닥을 적선한 적도 있다.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섣달 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슬픔은 어깨로 운다』 외, 시선집 『얼굴』 외, 산문집 『쉼표처럼 살고 싶다』 등 출간
소월시문학상, 유심작품상 외 수상
poet5368@naver.com
58년 개띠생들에게 라면 예찬 생의 원근법에 대하여 김수영에 대한 불편한 진실 괜히 열심히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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