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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엽 브레이커

소설 단편

허성환 2022-01-11

ISBN 979-11-9221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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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면 알겠지만 대충 쓴 소설이다.
대충 써도 이 정도는 쓴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이 소설에는 내 글 실력의 37% 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내 글 실력의 56% 이상이라도 쓰는 날에는
기성 작가들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
선배 작가들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글 실력을 숨긴다.

아주 오래전에 소설은 죽었다. 문인들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소설(무생물, 나이 측정 불가)의 시체를 붙잡고 아직 호흡이 붙어 있다고 우기는 중이다. 이 상황에 분노한 나는 내 사부 S급 문예지 등단 작가 L에게 대들고 있었다.

“아니, 형, 문장 노동자 노릇 해서 등단하면 뭐해요. 독자도 없는데. 이제 빠르고 쉬운 글을 써야 해요.”

“네가 등단하려는 곳이 어디지?”

“신춘문예요.”

전화기 너머로 L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거기에 맞는 소설을 써야지. 판타지 쓸 거면 장르문학도 공모전이 많으니까 거기 응모하면 되잖아. 며칠 전에 순문학×장르문학 강연 갔다 왔어. 판타지 작가가 포르쉐 타고 왔더라. 137억 벌었다는데. 부럽냐? 그러면 너도 포르쉐 타고 한강 뷰 오피스텔에 살면서 판타지 써.”

토라진 나는 당분간 다른 사부님을 모시기로 했다. 인터넷 구글링으로 새로 찾은 예비 사부는 월 29만 9천 원에 강의 영상+무제한 피드백을 주는 S급 플랫폼 판타지 작가였다. 과외 구인 글부터 범상치 않았다. ‘이 세계에서 잠시 낮잠 때리고 일어났더니 내가 S급 플랫폼 연재 작가?’라는 입질이 심하게 오는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고 있었다.

결제를 하기에 앞서 새로 모실 사부의 글을 살펴봤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았다. 《내가 존나 쎈데 너희가 어디 감히 깝침? 마왕이건 드래곤이건 내 밑으로 다 집합》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판타지 소설이었다. 1년 내내 장르 소설 1등 자리를 내놓지 않고 유료 결제 3억 뷰를 넘기고 있었다. 성층권을 뚫고 베스트셀러 인기 1위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의 수입을 달에 최소 7천만 원 이상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의 소설 속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존나 쌔다. 지나치게 쌔기 때문에 나와 옷깃만 스쳐도 상대방의 쇄골이 파손된다. 스파토이 같이 골격으로 이루어진 생명체는 나와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기 때문에 던전의 몬스터들이 나에게 쫄 수밖에 없다. 나는 스파토이 대장에게 가서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하정우처럼 말했다.

“어이, 아그야, 여기 담배에 불 좀 붙여봐라.”

“예, 형님.”

스파토이 대장은 척추관협착증 악화로 사망했다.

뭐지? 이 미치다 못해 돌아버린 소설은? 이제 텍스트는 진짜 종말의 시대를 맞이한 것인가. 내일 당장 외계인이 32개월 할부로 산 UFO(에어백 옵션 없음)를 타고 와서 지구를 침략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2024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2021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heosunghwan@naver.com ​

전두엽 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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