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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가 필요한가요

소설 단편

김수영 2022-01-11

ISBN 979-11-9221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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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차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넘치는 안마의자 광고를 보면서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 안마의자에 앉는 사람은 누구일까.
아, 저는 안마의자가 없습니다.

앉지 못하는 의자도 의자인가 반문하는 여자.
안마의자에 여자를 앉히고 싶은, 미니어처 의자를 만드는 남자.
둘의 시각차는 극복될 수 있을까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좋은 하루.

귀에 착 감기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원한 이마며 서글서글한 눈, 깔끔한 피부를 가진 남자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의례적으로 고개를 까닥 숙였다. 오픈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들었다. 우유는 파주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나의 아침밥이었다. 자동 계산대로 가 손목에 찬 직원 코드를 대고 결제했다. 매장을 점검하던 식품부 담당 직원이 다가왔다. 나는 눈으로 그를 가리켰다. 아침마다 매장을 걷는 남잔데, 관심 있는 사람에겐 말을 던진다는 대답을 들었다. 은평구에서는 유일하게 오가닉 제품만 취급하는 제타마켓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작년 가을이었다.

오전, 오후로 나눠 나는 매장을 돌았다. 제품의 신선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디스플레이를 조정하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와는 거의 날마다 마주쳤다.

이 빌딩 5층에서 공방을 해요. 혹시 목공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저는 건축을 전공했는데 의자를 만들어요. 비 오는 날을 좋아합니다. 날마다 30분은 걸어요. 소주보다는 맥주를 좋아합니다.

그는 내게 눈인사를 하면서 소음처럼 말을 던지고 지나갔다. 은근슬쩍 허공에 뿌리고 간 그의 말이 내 머릿속에 내려앉았고 쌓여갔다. 내버려두었더니 먼지처럼 차곡차곡 차올랐다. 어느새 오래 알아왔던 동료나 이웃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무인 화장품 코너를 점검하는데 그가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푸석하고 까칠했다. 턱 밑에 뾰루지까지 나 있었다. 어젯밤 잠을 설쳤구나 싶었다.

진정 효과가 좋은 천연 허브 제품이 새로 출시됐는데.

내가 먼저 말을 걸자 그는 귓불이 벌게지면서 허둥거렸다. 대답 대신 미니어처 의자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엉뚱한 질문에 내가 주춤하는 사이, 그는 살 물건이 있는 것처럼 다른 코너로 갔다. 풋. 나도 모르게 입에서 바람이 빠졌다.

혹시 보시겠어요? 내가 만든 의자들인데.

2018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1 앤솔로지 <폴더명_울새> 출간
2021 소설집 <애도의 방식> 출간
2021 심훈 문학상 수상

 

alpinesy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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