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정도 하드에 묵혀있던 이야기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그런 마음으로 떠나보냈고 영락없이 되돌아왔다. 몇 번 반복되자 시들해졌다. 공모전 소식을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한 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 당일, 자습하는 학생을 앞에 두고 소설을 고쳤다. 중간중간 질문을 받고 답해주고 문제를 풀어주느라 정작 문장이 제대로 되어가는지 돌볼 겨를이 없었다.
숙취로 힘겨워하며 기상 알람을 30분씩 늦추던 중이었다. 정말로 몸을 일으켜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바로 그 순간 당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통화를 마치고 칫솔을 쥐는데 손이 떨렸다. 그제야 간밤에 꾼 꿈이 떠올랐다.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내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떻게 네가 감히,로 시작하는 말로 어깃장을 놓았지만 실은 그렇게라도 봐서 기뻤다. 인터넷에 ‘집에 누가 들어오는 꿈’을 검색했다. 구하는 소망의 목표 달성 및 많은 이권이나 재물의 안정과 지위와 사업에 따른 발전과 영화를 얻게 된다.
스무 살 때부터 막연하게 품어 왔던 꿈이었다. 오래도 걸렸다. 먹고 살기 바빠 읽고 쓰는 데 소홀했던 탓이다. 돌려보내지 않고 품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는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세요, 하는 독려로 받아들이겠다.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내준 친구들에게도, 용돈을 부쳐준 엄마에게는 특히 더욱 고맙다.
백지 앞은 여전히 두렵다. 그렇지만 뭐라도 쓰고 술은 좀 줄이겠습니다.
“지겨워.”
아내와 살기 시작한 이후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마도 “지겨워”일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그 말을 아내 앞에서 내뱉는 일은 없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 어쨌거나 졸업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어학원을 등록하고 시간당 몇십만 원에 육박하는 레슨비를 내며 유학을 준비하던―누가 봐도 썩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그녀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그였다. 처음 만난 날, 마치 대역 죄인을 대하듯 자신을 바라보던 장인 내외의 눈빛을 떠올리면 그는 아직도 손에 땀이 흥건해지곤 했다. 더구나 그들이 외동딸의 몫으로 턱턱 내어준 신축 빌라며 외제 차 같은 것들은 어떤가!
그가 스스로를 지겹다는 말의 지읒 자조차 꺼낼 자격이 없는 놈이라 여기며 굴욕감을 견디는 동안, 그의 아내는 그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듯했다. 그녀는 종종 임신 때문에 안타깝게 유학의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를 들먹이고는 “아아”라든지 “저런”하고 탄식하는 좌중의 반응을 살핀 뒤, 잡지에서 막 튀어나온 모델 같은 인공적인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던 것이다.
“후회는 없어요. 저는 지금 정말로 만족스럽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말하자면 처가의 은밀한 멸시나 아내의 허영, 그런 것들은 독한 위스키를 삼키듯 눈을 질끈 감고 넘기면 그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 그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건 초 단위로 널뛰는 아내의 기분이었다. 긴 연애 시절 동안 면역이 생겼다고 믿었던 건 착각이었다. 아내는 때로 일곱 살 난 딸아이처럼 신나게 재잘거리다가도 이내 우울증 환자로 돌변해 눈물을 찍어냈으며, 까다로운 직장 상사처럼 히스테리를 부리다가도 갑자기 콧노래를 불러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곤 했다. 대부분의 결말은 그녀가 마구 집어던진 집기들―교묘하게도 그녀는 값나가는 물건들은 손대지 않았다―로 엉망이 된 집안을 치우는 그의 모습으로 끝이 났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지겨워, 지겨워, 정말로 지겹다고 중얼거리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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