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낯선」이라는 제목에는 사랑에 대한 거부감이 도사리고 있다. 사랑에 대한 거부감은 사랑의 의미가 우주적으로 애매모호하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보다 낯설고, 그것보다 생경한 관계를 통해, 그것의 애매모호한 의미성을 극복해보려고 시작한 소설이기도 하다.
노자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는 말을 한 것처럼, 그것을 그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랑은 모두 사랑이 아니다. 통속관념이고 낡고 너덜거리는 고정관념일 뿐이다. 소설이 그렇게 갈 수는 없으니 그것보다 낯선 관계를 통해 그것을 에돌아 때리는 길을 찾고 싶었다.
소설적 반전으로 찾아낸 게 버려진 배추밭이고, 거기서 우러난 게 사랑보다 낯선 ‘김치’라는 단어였다. 그렇게 엉뚱하게, 이 소설의 내부 배선은 돌려차기와 옆차기로 구성되었다. 세상도 그렇게 살면 싱싱한 겉절이 맛이 날 텐데 정말 아쉽다. 돌아다니며 돌려차기와 옆차기만 날리다 보면 죄수복 입고 겉절이도 못 먹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가 내 위에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머리를 들자 그녀가 쉿, 하고 내 입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왜 이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도저히 물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얼마나 잤는지, 몇 시나 됐는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녀는 긴장이 극에 달한 동작으로 나를 제압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운전석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나는 그녀의 일방적 공격에 초반부터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미치겠어, 미치겠어, 하는 말이 연해 귓전으로 밀려들 뿐이었다. 그녀는 정말 미친 여자처럼 온몸으로 진저리를 쳐대며 나의 목과 얼굴과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당겼다.
허공을 올려다보자 장례식장 공간에 매달려 있던 창호등이 그녀의 머리 위에서 음산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치마를 걷고 내 위에 곧게 앉았을 때, 나는 그녀가 말한 극에 달한 긴장의 실체를 감지할 수 있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인 견딜 수 없는 긴장, 그것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생명력이란 걸 비로소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래, 그것이 없으면 삶도 이미 죽음과 다를 바 없으리라.
태풍 같은 열정이 스러진 뒤, 그녀는 다시 차를 빠져나갔다. 나는 상체를 조금 일으키고 계기판의 시계를 보았다. 세시 이십 분…… 아직 관통해야 할 어둠이 까마득하다는 생각이 들어 힘없이 의자에 몸을 눕혔다. 허공에 아직도 빛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진저리를 쳐대던 그녀의 머리 위에서 빛을 발하던 창호등…… 그것은 삶의 징표인가, 죽음의 징표인가.
“빨리 출발해요. 최고 속력으로, 내가 뒤돌아볼 여유를 주지 말고 달려요.”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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