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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옥탑방

소설 중편

박상우 2022-07-05

ISBN 979-11-92211-26-8(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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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이상문학상 대상수상작

이 소설은 ‘옥탑방’이라는 단어 하나로부터 잉태된 것이다. 그 낯선 단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미묘한 충격과 영감을 동시에 받았다. ‘옥탑방’이라는 언어적 자장 안에 내가 반드시 탐사해야 할 문학적 공간성이 내재된 것 같다는 직감 때문에 나는 이 단어를 일 년 반 정도 마음에 품고 부화시켰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그것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 되면서부터 옥탑방이라는 말은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두 명의 대통령 후보들에게 기자들이 옥탑방을 아느냐고 질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두 명의 후보들이 모두 모른다고 대답하는 일까지 있었다. 대통령 후보들이 옥탑방을 모른다고 한 것에 대해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전화를 받기까지 했다. 물론 노코멘트.

몇 년 뒤인가, 어느 술집의 서빙 청년이 나와 동행한 사람의 말을 얼핏 듣고 다가와 “옥탑방 고양이 아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라며 꾸벅 인사까지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아무려나 옥탑방은 그렇게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이제는 옥탑방이라는 말 대신 펜트하우스나 루프탑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도처에서 목격하게 된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옥탑방’이라는 자궁에서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난 두 명의 남녀주인공들에 대해 나는 지금도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다. 이 젊은 남녀의 미래가 행복하기를 그토록 간구했건만 지금 세상 도처에는 이 옥탑방 출신들보다 더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옥탑방의 남녀가 사랑마저 뒤로 물리며 서로를 이해하려 한 지점, 거기서 나는 늘 눈두덩이 욱신거리고 가슴이 옥죄는 아픔을 느낀다. 가난의 상징과 다를 바 없으나 진정한 사랑이 깃든 공중정원―내 마음의 옥탑방에는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옥탑방의 내부는 반으로 나뉘어 왼편에는 방, 오른편에는 주방과 화장실이 있었다. 엷은 화장품 냄새가 밴 방에는 작은 화장대와 상(床), 그리고 옷장이 놓여 있었다. 몇 가지의 취사도구가 눈에 띄는 주방을 먼저 보고 곧이어 주방을 통해 방으로 들어간 뒤에 나는 그녀가 가슴에 빗장을 지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현대판 가나안, 풍요로운 물질의 바다와 같은 백화점에서 가장 화려한 제복을 입고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아 근무하는 상징적인 존재가 이렇게 옹색한 옥탑방에다 둥지를 틀고 있으리라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으랴.

할말을 잃은 표정으로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마찬가지, 나도 할말이 없어 반쯤 고개를 들고 망연한 눈빛으로 맞은편 벽면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녀와 내가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나에게는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그녀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온전하게 교감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때 나의 기분을 깨트려버리듯 냉랭한 어조로 그녀가 말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 나가줘요.”

십 분쯤 지난 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콘크리트 마당으로 나왔다. 그때 나는 옥상을 둘러싼 낮은 에움벽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옆으로 다가와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한없이 미물스런 인간의 세계, 가련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자만심을 되새김질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지상을 내려다보던 그녀, 나와는 견해가 다르다는 듯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입을 열었다.

“지금 민수씨가 한 말은 신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예요. 여기 서서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굽어보면…… 저 낮은 곳으로 두 번 다시 내려가기가 싫어져요. 저 가파른 언덕길을 하루에 두 번씩 힘겹게 오르내리며 내가 무엇을 꿈꾸는지 아세요? 지금 민수씨가 말한 저 가련한 고난의 세계, 저곳이 아무리 미물스럽고 속물스럽다고 해도…… 그래도 저곳으로 내려가 살고싶다는 생각을 나는 날마다 해요. 저곳의 주민이 되고, 저곳의 주민들처럼 미물스럽고 속물스럽게 사는 거…… 그게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꿈이라구요.”

“가난에서 벗어나는 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지상의 주민이 되어 미물스럽고 속물스런 세계에 안주한다는 거…… 어쩌면 인간적인 타락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면 어떤 식으로도 난 그걸 부정하고 싶지 않아요. 세상을 착하고 올바르게 산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건 신들이 노여워할 만한 꿈이로군.”

“그래요. 신 같은 건 믿어본 적도 없으니까, 설령 내 꿈이 사악하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누가 뭐라든 그것이 나에게는 살아갈 힘이 되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난 꿈을 꾸듯 현실을 견디고 있어요. 아침마다 이곳을 내려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 내가 불완전한 지상의 주민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아세요? 그래서 하루 일을 끝내고 이곳으로 올라오면 여기가 마치 내 꿈이 자라는 온상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내 사악한 꿈이 자라는 비밀스런 온상…… 내가 이곳을 민수씨에게 보여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죠?”

“글쎄, 따뜻한 배려는 아닌 것 같군.”

“민수씨가 나에게 커피를 사주던 날…… 백화점 5층 매장으로 올라가는 게 두려워서 나를 훔쳐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아주 잠시 나는 내 꿈을 잊고 있었어요. 회사가 있는 11층과 형네 집이 있는 17층으로 올라가는 일이 죽기보다 싫다는 얘기까지 듣고 나서…… 어쩌면 이 사람도 나처럼 지상의 주민이 되지 못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나 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하지만 내가 민수씨를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그래도 나는 내 꿈을 포기할 수 없어요. 나는 민수씨처럼 착하지도 않고 그렇게 착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거든요. 나를 만나는 건 상관없지만 나의 꿈 때문에 민수씨가 상처받게 될까 봐…… 그래서 오늘 민수씨에게 내 꿈의 온상을 보여주는 거예요. 보세요, 민수씨가 훔쳐보던 그 여자가 아직도 나라고 생각되나요?”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네이버: 박상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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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99년 어느 겨울날 만났던 내 마음의 옥탑방에 대한 낙서 배재연 20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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