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하나로 묶은 건 역설스럽게도 코로나였다. 한국과 멀리 떨어진 시베리아의 오지 투바에도 그 코로나가 힘을 미쳤다. 이번 소설은 그 투바 땅에 갔다가 알게 된 온다르 덕분에 선을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온다르가 있다. 전에 한국에서 우연찮게 알게 된 투바의 젊은 친구 온다르.
하나는 코로나로, 다른 하나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그들이 지녔던 열정은 무엇일까.
안톤 체호프가 필요했다. 흙먼지가 풀풀 흩날리는 투바에서 온다르와 나눈 러시아문학에 대한 이야기들. 올 초 체호프 작품을 다시 볼 때 불쑥 아프리카가 찾아들었다. 작품 「바냐 아저씨」에 스치듯 딱 두 번 등장하는 게 아프리카였다. 그간 내 눈을 피해 사라졌던 아프리카. 그게 투바 땅으로 스며들었다.
저 명부(冥府)에서 지켜볼 두 온다르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합니다. 지금 온다르 칄긔츼는 병원에서 매우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COVID-19에 감염되어 2주째 병원에 있습니다. 사야나가 혹 당신이 도움 줄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라고 해서 이런 편지를 보냅니다.”
온다르 부인 사야나의 부탁으로 그의 비서가 보낸 내용이었다. 설령 제때 그 메시지를 읽었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온다르와 부인은 한국에 두어 차례 다녀갔기에 우리 의료 시스템을 믿었는지 몰랐다. 그 간절한 요청 속에는 어떻게 코로나를 치료하는지 알려달라는 게 분명했다. 한국이라고 뭐 다른 게 있을까. 모두가 갈팡질팡하는 중이었다.
온다르는 건장했다. 휴일이면 자주 총을 들고 타이가로 가서 늑대사냥을 하며 밤을 지새우던 그였다. 그런 그가 숨쉬기도 힘들어 괴로워하다가 죽었다. 내가 숨쉬기 힘들어 견디지 못하던 바냐에서처럼 사경을 헤매는 그를 도와달라는 메시지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결국 아프리카는 가지 못했구나!’
그의 죽음에 대한 내 반응은 그랬다. 이번엔 러시아 바냐의 열기 대신 사나운 폭양 속 아프리카 열기가 나를 달궜다. 가보지는 못했어도 상상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열기. 지난겨울 새해 인사를 주고받을 때 날씨가 영하 50도 가까이 내려간 투바의 온도계 사진을 덧붙였었다. 정말 그에게는 아프리카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주변에서 코로나로 죽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주변’이라는 말의 의미가 모호했다. 그가 정말 내 주변이었을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온다르 칄긔츼. 온다르는 성(姓)이고 이름이 칄긔츼인 그는 투바 국립극장 부원장이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큰 손을 내밀며 내 손을 꼭 쥐었다. 내 손은 그의 손아귀에 덮여 잘 보이지도 않았다. 큰 키에 우람한 체격, 우뚝하게 솟은 반듯한 코, 서글서글해 보이는 큰 눈. 첫인상은 ‘잘 생겼다’였다. 손을 푼 그는 다짜고짜 ‘온다르 장군’을 아냐고 물어왔다. ‘게네랄 온다르’. 소비에트 혁명 시절, 적군 편에 섰던 인물 아니면 2차 세계대전 당시 공훈을 세운 사람이겠지 넘겨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러시아의 도시에 장군 칭호를 받은 그런 인물들의 동상을 많이 보았다. 별로 내 관심을 끌 만한 게 아니라서 사진조차 찍어두지 않았다.
“두라크 온다르 몰라요?”
러시아어 ‘두라크’는 바보라는 소리다. 바보 온다르. 자기네 조상이 우리나라의 장군이었었다는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나는 그제야 바보 온달을 떠올렸다. 그랬다. 온다르와 온달.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들었던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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