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솔직한 사람은 쉽게 찔리고 쉽게 찌른다. 숨기는 기술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찔려서 아프고 저도 모르게 누군가를 찔러서 아프다. 이래저래 아프니 만남 자체를 기피하지만 영원히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프지 않은 때는 아마도 팬데믹 시대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일이 그에게는 제일 아프지 않은 시간이어야 마땅하다. 눈치 보지 않고 합법적으로 혼자 있을 수 있으므로. 하지만 숨기기와 드러내기의 기술이 서툰 그는 글을 쓰는 동안에도 아프다.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디까지 숨겨야 하는가의 문제가 늘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집 근처 숲을 산책하다 우연히 두 개의 나뭇가지에 각각 떨어져 앉은 호저 두 마리를 발견했다. 강에 살얼음이 낀 날씨였다. 웅크린 모습이 춥고 쓸쓸해 보이면서도 그 현명함이 부러웠다.
이 소설은 아슬아슬하게 찔리고 찌르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엘은 중앙일보 신춘문예 본선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동안 정착에 뼈를 갈아 넣느라 소설은 아예 손을 놓았다. 이제 소설에 뼈를 갈아 넣겠다 결심했으나 정착보다 소설 쓰는 게 더 막막했다. 한국에서 짊어지고 온 책들은 이사 때마다 버려서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나마 소장한 책들은 한물간 연예인처럼 시간을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한동안 인터넷을 뒤지며 혼자 끙끙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벌링턴 도서관에서 무료 크리에이티브 라이팅 수업을 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영어든 뭐든 기본은 같겠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육 개월을 다녔다. 기본적인 테크닉 몇 가지는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영어 소설을 쓰려던 건 아니므로 - 물론, 시도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므로 - 그만두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제이를 만났다. 강사가 추천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찾아 서가를 배회하고 있을 때였다.
픽션과 논픽션 서가 중간 탁자에 아래한글 창이 엘의 눈길을 끌었다. 노트북 주인인 제이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멍때리고 있었다. 엘이 화면 중간에서 깜박거리는 커서를 따라 무심코 훔쳐본 글은 소설이었다. 세상에. 벌링턴에서 한국어로 소설 쓰는 사람을 만나다니. 엘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앞뒤 안 가리고 대뜸 말을 걸었다.
소설 쓰시나 봐요?
제이가 얼른 노트북을 덮으며 돌아봤다.
에? 아, 그냥, 뭐.
자신이 소설 쓴다는 사실이 여전히 쑥스러운 제이는 모르는 사람에게 소설 쓰느냐는 질문을 받자 당황했다. 이 여자 뭐야. 훔쳐봤으면 그냥 지나칠 일이지. 제이의 기분을 알 턱이 없는 엘은 한술 더 떴다.
저는 4명 중 어떤 인물에 가까울까 이리 저리 대보며 읽었습니다. 남들이 불편하게 느끼면 어떨까 조심하려 들다보니, 요즘 들어 해야할 말을 되삼키는 편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내 의견을 낼 수 있는, 그 아슬아슬한 밸런스를 항상 찾으려 노력중입니다 ㅎㅎ 잘 읽어보았습니다.
고대하던 정은시 작가님의 후속작이네요. 설레는 마음으로 단숨에 읽었습니다. 전작 그레이 하운드의 강렬함과는 또 다른 묘한 매력이 있네요. 읽는 동안 독자인 저 역시 류,제이,엘,킴 사이에 둘러 앉아 그들의 아슬아슬한 관계에 미묘한 불편함을 함께 줄다리기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관계를 맺고 교류함은 늘상 반복해도 언제나 어렵습니다. 많은 공감이 됩니다.
총 3개
마음안자리
2023-02-07 15:56
GLEE
2023-02-07 15:05
GLEE
2023-02-07 1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