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면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언어가 기지개를 켠다.
언어는 일어나는 즉시
자음과 모음을 총동원해
행과 연으로 신속하게 나뉜다.
알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문장이란 거
그러나 한 사람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꼭꼭 숨겨둔 달콤한 말들과
꾹꾹 눌러 담아 아껴둔 고백은
과거에 상처 난 연애 DNA를 아물게 한다.
내가 당신에게 조금 더 심장이 두근거리는 방법을 배웠을 때
당신에 대한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한없이 모자라고 부족한
뾰족하고 오돌토돌한 언어가 심장에서 선혈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그 낯선, 처음 겪는 통증
가슴 피멍들고 찢어지게 아프고 쓰라린 흉통이
이상하리만치 기분 좋았다
음… 그러니까……
조금 더 젊었던
그 어느 햇살 고왔던 날
나를 타인과 비교 없이 그윽하게 바라봐줬던 당신의 눈빛 한 방에
이 추잡하고 못마땅한 세상을 다시 딛고 일어났다.
나는 쓰는 사람
나는 반드시 써야만 하는 사람
내가 존경하는
반지하에서 그림자놀이를 하던 어떤 시인처럼
나도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으면서’
이 소설을 썼다.
당신이 책장의 시집을 만지작거렸다.
윤동주 삼천오백 원.
류시화 사천 원.
모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산 것으로 새것은 없었다.
김소월 삼천이백 원.
백석 이천백 원.
당신이 손가락으로 시집을 건드릴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다. 대출로 겨우 마련한 칠 평짜리 카페에 채울 소품을 살 여유가 없었다. 나는 시를 몰랐고 시인이 어떻게 시를 탄생시키는지 알려 한 적 없었다. 식물 패브릭 포스터나 빈티지 소품, 장식품을 주문 제작할 여건이 되지 않아서 값이 싼 시집을 택했을 뿐이었다.
당신이 이천삼백 원짜리 한용운 시집 앞에서 멈췄다. ‘아아, 님은 갔습니다.’ 당신은 한용운 시집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천 원짜리 피천득 시집을 지나 책장 가장 구석에 방치되듯이 넘어진 구백 원짜리 박라연의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시집을 들었다.
시집이 구백 원짜리가 있었다. 신기해서 샀다. 시인의 고뇌를 묶은 것을 어떻게 구백 원에 판매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탔던 탓에 박라연의 시집은 겉면의 표지가 낡다 못해 끝자락이 다 떨어져 있었다. 표지의 그림은 한 여인의 초상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 완전한 형체를 알 수 없었다.
당신이 작은 손바닥을 여인의 얼굴 위에 갖다 대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매장에는 몇 없던 손님도 다 빠져나가고 나와 당신밖에 남지 않았다. 당신은 시집을 내려놓고 뜬금없이 내 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