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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의 신을 만났다

에세이 선택안함

이상욱 2023-06-16

ISBN 9791192211848(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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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다는 건 경험상 매우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다. 책을(그것이 지긋지긋할 만큼 재미가 없어도) 끊임없이 읽어야 하고, 문장과 구성 훈련을 최소 몇 년 이상 해야 한다. 긴 시간을 들여 완성한 소설은 대부분 졸렬하기 짝이 없다. 운 좋게 작가가 되어도, 손바닥만 한 화면에서 소설보다 재밌는 것들이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가뜩이나 줄어든 독자는 더 줄어들 예정이다.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미래마저 불투명하다.

소설가란 도태종(淘汰種)이다.

평생 신을 섬긴 수도자가, 근대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신을 버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솔직히 신보다 소설이 먼저 죽게 생겼다.

그럼에도
굳이
기어코
끝내
사랑하는 이의 절박한 만류를 뿌리치면서까지
소설을 써야겠다면

여기 ‘내’가 ‘당신’의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사람은 욕망을 채우지 못할 때 바닥을 드러낸다. 그릇에 따라 바닥을 드러내는 방식이 천차만별인데, 내 경우 가장 치졸한 형태였다. 바로 가족과 환경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인데(재능 없음), 가장이라는 무게에 짓눌려(짓눌리지 않음), 재능을 썩히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믿었다. 주변을 원망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니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당시 나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정토회 불교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하루는 법사를 모시고 법문을 듣게 되었는데, 고민을 말하고 해답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저런 상담이 이어지다 젊은 여성의 차례가 되었다.

여자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약혼자는 법륜스님을 사이비라 말하며, 여자에게 정토회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은 계속 정토회에 다니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었다.

법사는 말했다.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 약혼자의 말대로 정토회를 그만두고 마음 편하게 결혼하는 겁니다.
둘, 약혼자와 파혼하고 마음 편하게 정토회에 다니는 겁니다.
셋, 약혼자와 결혼도 하고 정토회에도 다니는 겁니다. 대신 이 경우에는 눈치를 좀 봐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말고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과연 그렇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책임진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참 어리석은 여자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에게 주어진 것도 세 가지 길뿐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에 전념한다.
소설을 그만두고 직장에 전념한다.
직장에 다니면서 좀 힘들더라도 시간을 내서 소설을 쓴다.

나는 이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져야 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날 나는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났다. 애초에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지도 않았다. 고통은 무지에서 기원한다. 나는 고통스러운 자가 아니라 무지한 자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못해도 일 년에 두세 번은 들었는데, 나는 그냥 무지한 자가 아니라 참으로 무지한 자였다.

2013문학의 오늘소설 신인상 당선

2015경계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문학공모 선정

2021년 소설집 기린의 심장출간

2021년 엔솔러지 소설집 숨쉬는 소설출간

2024 종이책『소설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공저) 출간​

웹북 『스탠다드맨』 『나는 소설의 신을 만났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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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sang2406@naver.com​

나는 소설의 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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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입심 좋은 작가의 재미난 에세이 유안 2023-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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