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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을 들어라

소설 단편

박상우 2023-09-03

ISBN 979-11-92211-93-0(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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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지상주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에 적용된 두 개의 화두는 <밖>과 <안>이다. 인간의 시선은 밖을 지향하기 때문에 밖에서 모든 것을 구하고 찾는다. 밖을 지향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안의 존재성을 까맣게 잊고 사는 사람이 많다. 모든 것이 안에 있는데 기를 쓰며 밖을 지향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는 인간으로 하여금 정신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학적인 존재로 태어나 생물학적인 존재로 생을 마감하지만 개중에는 정신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밖과 안에서 비롯된 차이 때문이다. 그것이 연애 지상주의자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이고 그를 통해 <밖>과 <안>의 화두를 견인하게 만든 이유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연애 감정은 바람과 가장 유사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바람을 본 사람이 없는데 바람이 분다, 바람이 잔다 등등의 표현을 한다. 보이지 않지만 불어올 때마다 매번 다른 느낌을 준다. 바람이 불면 깃발이 펄럭이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물결이 번져나간다. 연애 감정도 다를 게 없다. 그것의 실체를 볼 수도 없고 형언할 수도 없는데 분명하게 변화된 감정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말해 연애는 순수하게 바람이 나는 일이다. 스스로 바람이 되어 불어가는 일이고 바람과 하나가 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애는 순수하게 바람의 말을 듣는 과정이다. 바람의 말에는 억압도 없고 강압도 없고 규범도 없다. 바람이 불어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사랑이라고 규정하고 서로를 옭아매기 시작하면 더 이상 바람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내 연애 잠언집의 제목이 ’바람의 말을 들어라‘가 된 것이다.

연애 잠언집이 경험을 바탕으로 삼는다는 걸 감안한다면 요가선생은 나에게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미지는 위험을 수반하지만 그만큼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기도 했다. 당연한 결과, 그녀에 대한 관심은 오래잖아 요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몇 날 며칠 요가를 검색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그녀에 대한 관심의 변형이거나 심화라는 걸 확인했을 뿐 아무리 집중해도 요가 그 자체에 대해서는 도무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요가가 정신과 육체의 합일을 꾀하는 것이라면 섹스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한 가지, 요가는 혼자 하고 섹스는 둘이 한다는 것.

세찬 소나기가 지나간 어느 날 저녁 무렵, 나는 상쾌하고 유쾌한 기분으로 요가선생을 찾아갔다. 비가 지나간 뒤라서인지 대기는 상큼하고 세상 만물은 명징해 보였다. 내가 출입문 밖에서 벨을 누르자 안에서 누구세요?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비디오폰으로 나를 보고 그녀가 묻고 있을 터였다. 나는 요가 수강 문의를 하러 왔다고 명쾌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도 명쾌한 어조로 응답했다.

“남자 수강생은 받지 않습니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네이버: 박상우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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