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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둠이, 어떤 소리가

소설 단편

이경석 2023-09-11

ISBN 979-11-92211-95-4(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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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결핍에 관해 생각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부족하게 된 그런 상태. 크고 작을 뿐 어쩌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그런 결핍. 또 그로 인한 아픔과 괴로움, 그리고 그걸 달래줄 어떤 위로.

소설의 소재는 실제 경험에서 건져냈다. 어느 날 몸을 실은 택시에서, 오래전 공황장애를 겪어 여전히 터널에 들어가는 게 두렵다는 운전기사를 만났다. 꼭 소설에 써먹어야지, 메모를 해뒀었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수첩을 목에 걸고 다니며 필담으로 대화를 한다는 설정은 한 친구가 실제 겪은 일이었다. 허락도 없이 두 이야기를 가져다 이 소설을 썼다. 두 사람에게 늦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세상의 모든 김진구와 하현정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썼다. 아픈 마음을 보듬어 온기를 전하고 싶었다. 솔직히 그게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걸 판단하는 건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나는 그저, 그들이 어딘가에 잘 도착했기를 바란다. 낯모를 당신 또한, 그게 뭐든 잘 극복해냈기를.

버스정류장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들 넷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좆나나 씨발 같은 상스러운 단어가 말의 머리와 꼬리를 장식하는, 요즘 그 또래의 아이들다운 시답잖은 대화였다. 하현정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무리 중 째지는 목소리를 가진 아이의 말이 가장 귀에 거슬렸다. 소란스럽게 들리는 수다 사이로 웅웅대는 울림이 전해졌다.

버스를 타보려던 하현정은 마음을 고쳐먹고 언제나 그랬듯이 택시를 잡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멀어지면서, 하현정은 고개를 돌려 아이들 무리를 흘겨봤다. 마스크로 가린 입술을 움직여, 입을 찢어버리고 싶어, 하고 작게 내뱉었다.

택시에 올라탄 하현정은 줄을 연결해 목에 건 수첩을 펼쳐 교대역으로 가주세요, 라고 쓰고는 운전기사에게 내보였다. 기사는 수첩과 하현정의 얼굴을 몇 번 번갈아 보고는 별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하지만 잠시 후, 아침부터 재수 없게 병신이 탔네. 기사가 혼잣말을 했다.

젊은 년이 어쩌다가 쯧쯧. 그나저나 오늘 하루도 재수 옴 붙었구먼 에이 씨발.

하현정은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지만 매번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말을 못하면 듣지도 못한다고 생각했다.

택시는 가양대교 남단 연결도로를 통해 올림픽대로에 들어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도로는 자동차로 가득했다. 각종 수입차와 국산차, 자가용과 영업용 화물차며 승합차, 공항 리무진버스와 노선버스가 피난 행렬처럼 좁은 틈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동차는 말을 하지 않으니 참 다행이야. 차에 입이 달려서 저마다 한마디씩 지껄인다면 얼마나 시끄러울까, 하현정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택시는 반포대교 남단으로 올림픽대로를 벗어나 고속터미널에서 교대역 방면으로 우회전했다. 교대역 사거리에서 멈춰 선 택시 안에서 요금을 계산한 하현정은 미리 펼쳐둔 수첩을 운전기사의 눈앞에 내밀었다.

다 들려 개새끼야.

2016년 『내일을 여는 작가』소설 부문 신인상 당선  

 

leeks@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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