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쓸 당시 나는 소설가 지망생이면서 의학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드나들며 척추‧관절 계통의 질환과 최신 치료법을 취재해 기사를 썼다. 소설이 될만한 소재를 찾는 걸 밥벌이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시기라, 그런 경험은 자연스레 소설의 화두가 됐다. 관절이며 장기며 기계 부품처럼 손쉽게 갈아 끼우는 미래가 그려졌다. 그런데 그게 마냥 좋기만 한 일일까.
미래의 시점에서 오늘의 파국을 상상하는 건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아마도 이 소설을 쓰면서 순수한 ‘쓰는 재미’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같다. 초짜가 겁 없이 너무 큰 주제를 다뤘나 싶기도 했지만 쓰는 동안 내가 재미있었으니 재미있게 읽힐 거라고 멋대로 안도했다. 솔직히 소설은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재미있게 읽고 난 뒤엔 조금 석연찮은 기분이 남기를 바란다. 즐겁지만 다소 건강을 해치는, 담배나 술처럼 적당히 불온한 소설을 쓰고 싶다면 맞는 표현일까.
내게 ‘소설가’란 이름을 갖게 해준 기특한 소설이지만 많이 읽히지 못해 아쉬웠다. 뒤늦게라도 독자를 만날 기회를 갖게 해준 스토리코스모스에 감사드린다. 이 소설을 읽는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재미를 줄 수 있다면 작가로서 더할 것 없는 기쁨이겠다. 다만, 읽고 난 뒤 어쩐지 미래가 암울해졌대도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섬은 그 경기를 유치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10대 소녀부터 보행기에 몸을 의지한 노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섬의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았다. 오래전에 문을 닫았던 음식점과 술집, 마사지 숍과 호텔이 다시 문을 열었다. 거리의 벽이란 벽에는 모조리 제이슨의 챔피언 방어전 포스터가 붙었다. 여자들은 제이슨의 이니셜과 얼굴을 가슴과 허벅지에 새겨 넣었고 아이들은 그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몰려다녔다.
‘관절기의 신’이라 불린 제이슨의 기술은 그야말로 신기라 부를 만했다. 격투기 선수치고는 작은 몸집임에도 날렵한 태클 뒤에 물 흐르듯 이어지는 관절기로 집채만 한 상대 선수를 어린아이처럼 울부짖게 만들곤 했다. 대륙별로 열리던 이종격투기 리그가 하나로 통합된 지 2년째였다.
그즈음 홀연 등장한 제이슨은 그동안 눈부신 관절기로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이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로라하는 도전자들과의 방어전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렸다. 챔피언에게는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제이슨은 늘 이겼다. 프로 축구가 시들해지면서 스포츠 팬들이 이렇다 할 관심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다. 불패의 파이터는 그런 이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고 그렇게 제이슨은 격투기 세계의 신이 됐다. 그리고 그의 경기는 늘 엄청난 경제적 파급 효과를 낳으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3차 방어전의 도전자는 과거 한국과 일본, 중국과 태국이 참여한 아시아 리그에서 명성을 날린 선수였다. 하체 관절기를 주무기로 삼아 언더 스네이크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본명은 밝혀진 바가 없었다. 언더 스네이크는 한국과 일본을 잇는 해저 셔틀의 충돌 사고로 목과 어깨 관절을 다쳐 지난 2년간 링 위에 서지 못했다. 그런 그가 치료와 재활을 마치고 복귀 무대로 선택한 것이 제이슨과의 대결이었다. 하체 관절기의 언더 스네이크와 상체 관절기의 신 제이슨의 대결, 말이 필요 없는 빅매치였다. 섬이 들끓었다.
총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