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테이블 : 2023-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 단편 당선작

김나은 2023-09-19

ISBN 979-11-92211-96-1(05810)

  • 리뷰 4
  • 댓글 0

1,000 코인

  • talk
  • blog
  • facebook

2023-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을 즈음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 그때 나는 어떻게든 한국을 벗어나고 싶어서 해외봉사 관련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고 마침 공고에 올라온 에티오피아 해외 봉사단 자소서를 쓰고 있었다.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한국에 조금 더 있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소설을 써온 시간들, 내가 삶을 향해 애써온 순간들이 아주 헛된 건 아니었구나, 하고.

나보다 더 당선 소식을 기뻐해준 언주 언니와 여원 언니, 두 사람의 이름을 소감문에 쓸 수 있어 감사하다. 학교 자료실에서 두 사람과 나눴던 이야기는 나에게 깊은 위안과 함께 소설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 길고 지난한 생에서 우리 자료실 지박령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나의 복임을 안다. 이 복을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테이블>을 쓰는 동안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을 자주 떠올렸다. 할머니가 된 엄마와 이모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든 행복하길 바라면서 소설 속 정미와 유연의 이야기를 썼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는 소설 쓰기를 이어갈 것이다. 김숙현이 나의 엄마이고, 엄마의 친구들이 나의 이모인 게 행복하다. 언제 어디에 있든 그 사랑만은 진심이다.

그리고 정미와 유연. 나를 사랑의 세계로 이끌어준 소설 속 두 주인공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내가 계속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작가 김나은의 기원이 되어주어 고맙다.

여전히 세상이 겁나고 두렵지만 이번 당선으로 나는 미래의 방향을 조금 더 삶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테이블>을 쓰며 그랬듯, 앞으로도 세상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그리워하며, 그렇게 살아가며 글을 쓰겠다. 다시 한번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당신은 내가 사이보그가 되는 게 싫어?

단팥빵을 삼킨 유연이 물었다. 정미는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다, 문득 말문이 막혔다. 싫다는 것에 앞서, 아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보그 수술로 유연이 얻게 될 것과 잃게 될 것을 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유연의 몸 자체가 사라진다는데, 그에 관해 정미가 너무 무지하다는 게 문제였다.

정미는 찢은 크루아상을 접시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수술이 당신을 죽이는 일이랑 다름없이 느껴져.

유연이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답을 기다리며 정미는 테이블 모서리의 파인 부분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반들반들한 다른 부분과 달리 거칠게 파인 나무가 손가락 끝에 간질거렸다. 침묵 끝에 유연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선택해야 해. 이 몸으로는 무서워서 더 살 수가 없어.

어째서, 라고 무심코 물으려다가 정미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손가락으로 모서리를 꾹꾹 눌렀다. 거칠거칠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모두 정리하려는 듯이. 손톱을 세워 모서리를 찌르다가 정미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 사이보그 수술을 받겠다고 말했을 때처럼 유연은 꼭 다물린 듯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할게. 기계인 당신이랑 같이 살 자신이 없어.

나는 그대로 나야. 내 몸이 아니라.

섹슈얼리티와 젠더, 몸과 정체성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라고 유연은 설명했다. 정미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여성성에 대해 생각했다. 정미가 유연을 사랑한 건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여성이기에 그녀는 유연에게 욕망을 느꼈고 그 욕망에서 사랑을 찾았다. 여성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된 연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유연이 달라진 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정미는 나무 테이블을 만지던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만약 당신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수술을 선택하는 거라면, 나는 수술이 아니라 심리 치료를 권하고 싶어. 수술을 해도 그 시선은 달라지지 않잖아.

사이보그 수술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어도 의체를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 짓는 시선은 남아 있었다. 수술을 받고 난 뒤에도 달라지지 않는 시선을 유연이 감당할 수 있을까. 자신의 동의로 사이보그 수술을 마쳤는데 유연이 여전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술을 후회한다면, 그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정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심리 치료를 받으면서 알았어. 나는 내 몸에서 벗어나고 싶어.

2023-3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naeun6724@naver.com 

테이블
심사평

댓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