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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순환을 즐기는 검은 유체

소설 단편

김솔 2023-11-09

ISBN 979-11-93452-08-0(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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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하게 파괴된 건물 속에서
온전하게 남겨진 팔다리라도 찾아내고 싶은 간절한 소망으로
내일 폭격될 아이들의 살아 있는 팔다리에
그들의 부모는 떨리는 볼펜으로 연락처를 적어 넣는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더욱이 아이들을 살해한 자들을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고독하게 순환하는 자들에겐 온전한 세계가 오랫동안 필요하다

넌 흑인이 된 지 겨우 넉 달밖에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진정한 흑인이라면 언제든 동전을 던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평생 지켜낼 수 있어야 하지. 설령 네가 바라던 선택이 아니더라도 결코 머뭇거려선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너의 운명을 결정해 버릴 테니까 조심해야 해.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니? 그러니까 네게 죽음이 오직 검은색이듯, 사랑 역시 나 같은 흑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면 말이야. 그나마 너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지. 이 땅에서 더 이상 흑인이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아시아라는 편견이 흑인의 자유로운 출입을 막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 갇혀 지내는 대부분의 흑인은 동성연애자나 성불구자가 될 수밖에 없을 거야. 아니면 근친혼 사실을 숨기기 위해 쥐며느리처럼 평생을 지하실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겠지. 우리가 이 땅을 아무 때고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다면 애당초 여기서 태어났을 리 없지 않겠어? 내 침대를 타고 아메리카 끝자락에라도 닿을 수만 있다면야 수만 개의 히스 페니스가 무슨 대수겠니? 남자들, 특히 권력자들이 자신의 성욕을 해결할 수 없을 때마다 크고 작은 전쟁을 세계 곳곳에서 일으키곤 했지. 넌 이제 백일몽에서 깨어나야 해. 샤워나 채식이나 꿈 없는 잠으로도 넌 더 이상 황색인으로 돌아갈 수 없어. 왜냐하면 황색인은 언제라도 흑인이나 백인으로 변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불안한 존재이니까. 그리고 사랑과 죽음의 곤죽 상태인 나 역시 너 때문에 최근에 흑인이 됐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면 좋겠어.

이런 이야기를 미스 바하마에게서 들었으면 행복하련만. 하지만 미스 바하마의 피부는 투명하다 못해 빛이 났다. 그녀는 결코 나 때문에 흑인이 될 리 없었고 동전을 던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망상, 어語』 『유럽식 독서법』, 장편소설로 『너도밤나무 바이러스』 『보편적 정신』 『마카로니 프로젝트』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부다페스트 이야기』가 있다.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nyxo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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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인은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 얼그레이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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