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안에 고착된 고정 관념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특히 성(性)에 대한 편견에 대해. 불과 얼마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사회 분위기가 자유로운 성을 내세우면서도 공공연하게 그 이면에서는 ‘처녀성’, ‘순결’이라는 잣대가 은근히 유포되던 시대였다. 시대를 지배하던 공기를 마시지 않기란 쉽지 않을 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의 관습적인 시선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해서 그것을 실체라고 믿는 오류를 저지르기도 한다. 소설에서 드러나진 않았으나 화자가 느끼는 두려움이나 거부의 몸짓에 이런 사회적 함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예전에 여자는 자기 신체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 않았나. 몸의 소리를 애써 부정하고 가두려던 시대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도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굳어진 것은 부드럽게 펴서 말랑말랑하게 하고 싶다. 자신을 잘 돌보지 않으면 마음도 몸도 굳어 딱딱하고 뻣뻣해진다.
방바닥에 거울을 놓고 흰 머리를 뽑다 문득, 정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거울을 내려놓고 일어나 조심스럽게 팬티를 벗었다. 그리고는 변기에 쭈그려 앉은 자세로 거울을 한가운데 두고 앉았다. 깊은 산속의 물가에 수줍게 핀 물봉선을 떠올렸다. 그러나 거울을 들여다본 순간 망치가 머릿속을 땅하고 때렸다.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기 없는 암적색의 일그러진 입술 모양을 하고서 거울 속에서 뜨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숨어 있다 어쩔 수 없이 바깥 세계에 드러난 자의 불안과 불만과 체념이 섞인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깊숙이 감춰진 성기를 드러내어 똑바로 바라보긴 처음이었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만 보아왔지 다리 사이에 가려진 곳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마주 본 적이 없었기에 거울을 본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런 얼굴로 초라하게 숨어 있었구나, 얘도 음지에서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한때 검푸르게 윤기가 나던 숲은 시들어 빛을 잃었고, 실밥이 묻은 것처럼 하얀 터럭도 몇 올 삐죽이 돋아 있었다. ‘거기’, 숨어 있는 입은 뭔가 할 말을 품고 있는 듯했다.
오키프의 도록을 덮으며 검은 붓꽃의 영상을 털어낸다. 나는 창 쪽으로 눈길을 준다. 전면창 가까이에 앉아 있는 한 남자는 테이블 위에 몇 개의 도록을 잔뜩 쌓아두고 있다. 천장이 높아서 남자의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사락사락 울린다. 오늘 자료실 방문자는 아직 저 남자 하나뿐이다.
2011년 『한국소설』 단편소설로 등단
2015년 소설집 『퍼즐 위의 새』 출간
2016년 『퍼즐 위의 새』로 ‘부산작가상’ 수상
2021년 뉴욕 문예지 『The Hopper』에 단편소설 ‘압정 위의 패랭이꽃’이 ‘’The Last Days’ 번역(양은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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