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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편

이아타 2023-12-17

ISBN 979-11-93452-13-4(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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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다 끝났다고, 깊은 바닷속을 흐르는 물소리 같은, 자신의 으슥하도록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았다.

섬 한 귀퉁이에서 허무와 고독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삼십 년 뿌리내리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죽음에 뿌리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허무한 흰 밤의 흰 고양이든, 고독한 검은 밤의 검은 고양이든 무슨 상관인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살아가면 되는 일이겠지. 그렇다. 죽음만이 완성이다.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사라진 꿈의 한 귀퉁이 같은 달이 허공에 붙박여 있었다.

잠깐 사이에 나이를 너무 먹어버린 거 같아요. 마흔이 무언가에 흘린 기분이라면 오십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심정이 돼버려요.

흐지부지 맑은 달빛이 빈집을 비춰주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심심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섬 속에 섬이 있듯, 내 속에도 섬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저는 이렇게 어두운 한밤중이 되면 밤은 섬이다, 하고 속으로 중얼거립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섬에 깊은 밤이 오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되는 밤, 그래서 오로지 나인 밤. 아마 섬의 밤만 그럴 것 같습니다.

남자의 한마디 한마디는 장미 꽃잎을 한 잎 한 잎 똑똑 따내듯 아찔하면서도 흔쾌한 기분이 들게 했다. 아마 모든 섬의 이름은 ‘오로지’이지 않을까 싶어요, 하고 여자가 대답했다.

툇마루 너머로 별이 보였다. 여자는 남자의 등에 턱을 괴고 오랫동안 창공의 별을 바라보았다. 가녀린 별이 팔딱팔딱 빛나고 있었다.

헤진 푸른 수세미와 삼십 년 묵은 잔대와 늙은 남자가 있는 풍경, 하고 여자는 중얼거렸다. 남자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멀겋게 웃었다. 늙은 남자에게서 밤의 바다 냄새가 났다. 여자는 소라껍데기에 그렇게 하듯 남자의 등에 귀를 가져다 댔다. ‘질척질척’ 물결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죽으려고 이 섬에 왔었죠. 하지만 이제는 살려고 올 거예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는지 등이 출렁거렸다. 그녀는 섬의 밤, 하고 중얼거리다 밤의 섬이라고 중얼거려 보았다.

계간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

2023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 스토리작가 공모 당선, SF소설 『베이츠』 출간 

소설집 『사월에 내리는 눈』, 『월요일의 게이트볼』 

심훈 문학상, 현진건 문학상 우수상 수상

 

miroo3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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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 지독히도 고독한 삶의 정경 minimum 202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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