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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소설 단편 당선작

조재민 2023-12-26

ISBN 979-11-93452-15-8(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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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

'짐'은 몇 년 전에 쓴 소설이다.
오랫동안 품고 있어서 애착도 많고 개작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다.
이번 스토리코스모스 당선을 통해서 이제 '짐'은 나를 떠나게 됐다.
아쉽고, 또 시원하다.
'짐'은 나를 떠나면서 내 인생의 '짐'을 덜어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짐'을 더했다.
작가라는 '짐'.
묵묵히 나의 '짐'을 메고 걸어가겠다.

오후 늦게 들어온 장모님은 거실을 보는 순간 말을 잃었다. 조용히 화를 모으고 아내를 기다리는 듯했다. 아내는 그날 저녁 늦게 집으로 들어왔다.

야 김민지!

아 치운다고. 정리한다고. 왜 소리를 질러!

이게 한두 번이야.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어? 내가 식모야!

모녀는 서로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까지 밤새 싸웠다.

그렇게 못마땅하면 내가 나가면 되잖아.

그래 나가. 지금 나가.

아 나간다고!

희미하게 감겨오던 눈으로 방에서 반쯤 자고 있던 내 눈이 벌떡 떠진다. 뭐? 나가라고? 나 지금 자고 있는데. 나도 나가야 되나?

오빠. 빨리 짐 싸. 여기서 못 살겠어. 엄마가 집에서 나가라잖아.

이런 결론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미필적 고의로 이 싸움이 전개되도록 방치한 것은, 장모님을 통해 아내가 자신의 짐을 정리해야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정도였지 이 새벽에 내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내는 보란 듯이 자신의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도 일단 뭐 대충 내 짐을 싸는 시늉을 했다. 한 한 시간 정도 우리가 우리 짐을 박스에 담고 있을 때 장모님은 안방으로 들어가 불을 껐다. 우리는 지쳤고 서로 아무 말 없이 우리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 날 모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또 하루가 지난날, 내가 늦게 퇴근했을 때 모녀는 같이 얘기를 나누며 tv를 보고 있었다. 모든 일이 지나간 것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다시는 모녀가 싸우지 않게 하고, 내가 새벽에 집을 나가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요컨대 이 집의 평화와 안녕을 저해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아내의 짐을 버리기로 했다.

아내 몰래.

하나씩 하나씩, 표나지 않게.

2023-4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웹북​​『짐』 『X에서 늙어 죽은 최초의 인간에 관한 보고서』출간 

 

withsun04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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