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 문자는 갑작스레 찾아온 몸살감기와 함께 왔다. 문득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등장인물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했다. 문득은 문득이지 않고, 부러 반 가량만 묻어둔 옛 기억들만이 ‘문득’ 떠오를 수 있으니까.
무작위 플레이리스트를 듣다 아주 오래전 듣던 노래를 찾아낼 때처럼, 그것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긴 긴 연휴를 불러오듯 쓰겠다. 보잘것없는 글재주에 기회를 준 심사위원분들에 감사드린다. 옆에서 문득문득 지지를 보내 준 부모님, 단짝, 고등학교 친구들에게도 형용할 수 없을 만치 고맙다.
마지막으로 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의 삶은 소설 다음에도 이어진다는 걸,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일은 없다는 걸 기억하며 쓰겠다.
바바는 항상 좀생이 같은 신에게 감사해했다. 이 좁은 셋방도 김치볶음밥도 전부 우리가 일궈낸 것인데 말이다. 토요일마다 장을 보는 것도 우리였고, 매달 집주인에게 세를 내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수돗물을 끓여 마시는 것도 우리였다. 우리는 우리를 견뎌야 했다. 그게 우리가 우리를 구하는 방법이었다.
반면 그녀가 툭하면 감사를 전하는 작자는 순 제멋대로였다. 그는 비를 내려 신발장을 잠기게 만들고, 심심하면 번개를 꽂아 정전이나 산불을 내곤 했으며, 내가 공모전에서 떨어지게 만들고, 바바가 승진을 못하게 막았다. 뿐만 아니라 바바가 회사에서 넌 고아라서 그렇게 싸가지가 없나, 마녀 같은 년, 소리를 듣게 만들기도 했다. 좆같은 새끼. 그 새끼는 나와 바바의 일상을 야금야금 앗아갈 뿐, 동전 한 푼 내려준 적 없다.
바바가 볶음밥을 한 입 크게 떠먹는 것에 맞춰 나는 손톱깎이로 왼손바닥을 뜯어냈다. 밴드가 조각나 손톱깎이에 붙었다. 몸을 만 공벌레 같은 살점들이 내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이런 씨발.”
바바가 내게 스테인리스 숟가락을 던졌다. 그리곤 가는 구릿빛 팔을 휘저으며 도마로 향했다. 두 손을 깍지 낀 채 내게 부엌칼을 겨누기 위해서. 바바는 벌벌 떠는 것 같기도, 희미하게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왜 저러고 있나. 나는 김치볶음밥을 한 입도 먹지 못했는데, 궁금했다. 나는 팔꿈치로 벽을 짚고 일어섰다. 혹시나 상이 엎어질까 조심하면서.
“그렇게 죽고 싶어? 그럼 죽여줄게. 내가 직접 죽여준다고.”
바닥에서 발을 떼려는데 바바가 내게 소리쳤다. 손바닥을 등 뒤에 숨긴 채 바바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밑 마디부터 뜨거워졌다. 직전까지 혈관을 돌고 있었을 액체가 무릎으로,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바바가 칼을 바닥에 내던지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는 떨고 있었다. 바바도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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