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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정보를 알고 싶지 않다

소설 단편

이상민 2024-01-07

ISBN 979-11-93452-20-2(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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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과정 중 처음 물 바깥으로 기어 나온 선구자적 생물이 그랬듯이, 인간의 감정이란 것도 결국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긴 세월에 걸쳐 생겨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두 눈으로 볼 수 없었지만, 기계라면 어떨까요? 그들도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칠까요? 우리가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물음에 제멋대로 답해보며, 이 소설을 썼습니다.

“…… 그의 손자도 차를 마신 겁니까?”

“말씀하신 대로, 누가 보아도 이대로 두었다간 사이좋게 차를 나눠마시고 죽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차를 마시기까지 고작 몇 초도 안 남은 상황에서 저는, 아니 제 몸을 제어하는 중앙처리장치는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개입할 것인가, 방관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 살릴 것인가?

저는 그대로 창문을 깨고 자트의 방에 뛰어 들어가 찻잔을 던지고, 독이 묻은 찻잎을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당황한 자트가 베개 밑에 숨겨둔 총을 겨누려 하자, 그의 손을 꺾고 목덜미에 신경독을 주입했습니다. 거품을 물고 온몸을 떨며 발작하던 자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손자의 눈앞에서 말입니다.”

“가장 바라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생각해도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자면 아닐지도 모릅니다. 찰나의 순간에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자트의 총은 안드로이드의 외피를 뚫을 만큼 파괴력 있는 총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자택에 침입해 가족이 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행한 이 잔인한 암살 행위가 널리 퍼지면서, 나머지 대상인 벡과 샴이 눈 깜짝할 새에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수십 년간 수면 위에 떠 오르지 않았던 야스민의 복수가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던 겁니다. 세 사람을 모두 찾아내 복수를 완성해야 하는 제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나는 무라드가 지나치게 인간적으로 대답하고 있다고 느꼈다. 분명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최선이었다는 듯 기억에 기름칠을 해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추적당하진 않았습니까? 현지 경찰이든, 감찰국으로부터든 간에 말입니다.”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운 좋게도, 당시만 해도 야스민이 살던 나라에선 안드로이드를 이용한 범죄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경찰은 당연히 이것이 인간이 한 짓이라고 단정 지었고, 수사 방향을 완전히 잘못 잡아버렸습니다. 몇 개월간은 노력하는 듯했지만 이내 포기해 버리더군요. 야스민이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놀랍도록 일관된 조직 아닙니까?”

구식 버전인 무라드가 지을 수 있는 웃는 표정은 어색하리만큼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달하고자 하는 웃음이 미소인지 조소인지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2023-1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 

웹북 ​​『이석 사유』 『나는 당신의 정보를 알고 싶지 않다』

 

neidkarel@naver.com

 

나는 당신의 정보를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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