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스티븐 시걸, 성룡, 브루스 윌리스가 악을 처단하고 다니는 걸 보며 자랐다. 이후 수많은 히어로들을 봐왔다. 이젠 너무 많아서 혼란스럽다. 내게 어벤져스의 멤버들이 가진 능력과 사연들을 다 아는가 물으면 자신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심지어는 공허하다. 아무리 봐도 내겐 그냥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저렇게 많은 악당들이 활개치고 있잖은가.
이 소설에는 악에 대한 심판관을 자처하고 자신을 희생해버리는 세 명의 우리 이웃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악행이라기보다 이기적인 행동일 뿐인 이들을 상대해 이 세 사람이 가졌던 무서운 분노는 오롯이 내 안에서 끄집어냈다는 점을 고백한다. 그 분노가 살의와 가깝다는 걸 깨닫고 놀라고 괴로워한 적도 많다. 확 써버리고 나니 나는 일단 시원하다.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독자들도 이 이야기를 읽고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어지면 좋겠다.
이렇게 적어놓고 끝내면 이 작가, 과연 안전한 사람일까 하고 걱정할 분들이 있을 것 같다. 안심해도 좋다. 작가가 되기 위해 내 안에서 이는 극단적인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오래 마주하는 훈련이 되어 있을 뿐, 이런 감정을 이야기 짓는 일 외에는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사랑, 연민, 그리움과 같은 아련한 감정을 내 안에서 최대치로 끌어올려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벽돌이 그의 머리 오른쪽을 강하게 가격했다. 그는 그대로 쓰러지면서 땅을 짚었다. 사람들은 달아나듯 흩어지거나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엎어진 채 땅을 짚고 있는 남자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누가 담배를 길에서……”
양복 차림의 젊은이가 엎어진 남자 뒤에 서서 씩씩대며 말했다. 양복은 손에 들고 있던 벽돌을 들여다봤다. 돌덩이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그에 비해 쓰러진 남자의 오른쪽 귀와 목덜미에는 피가 흥건했다. 남자는 겨우 몸을 가누면서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충격 때문에 어깨가 굳어버렸고 머리를 들 수 없었다. 땅을 짚고 있는 손을 머리 위로 들고 휘저으며 그저 혹시 있을 다음 공격을 막고자 할 뿐이었다.
교회 바로 앞이었다. 교회 사람들은 신도들을 서둘러 들어오게 한 뒤 문을 닫아걸었다. 유리문 안쪽에서 상황을 살피며 미처 못 들어선 신도가 보일 때만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구경꾼들이 참극이 일어난 현장을 넓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벽돌을 든 양복이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옆구리에 구두코를 깊고 강하게 찍어 넣었다. 사람들이 다시 비명을 질렀고 남자는 배를 깔고 엎어진 채 괴롭게 숨을 몰아쉬었다.
구경꾼들 틈에서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비집고 나왔다. 오토바이는 상황을 그제야 발견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오래 머물지 않고 재빨리 현장을 가로질렀다. 반대편 사람들이 몸을 움직여 오토바이가 가려는 방향으로 길을 터주었다. 쓰러진 남자가 입만 뻐끔거리며 정신을 잃어가는 중에 양복이 그의 얼굴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아 남자에게 귀를 기울였다. 남자가 힘겹게 애원했다.
“사, 살려……주……”
양복은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여기서 죽을 거예요. 그런데 뭘 잘못했는지는 아세요?”
양복이 남자의 두 눈을 들여다봤다. 이미 초점을 잃어가고 있는 듯 어딜 보고 있는지 불확실했다. 남자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해 봤지만 소용없이 버둥거릴 뿐이었다. 이마를 땅에 붙인 채 한숨 쉬듯 대답했다.
“뭘……”
“길거리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말란 말이에요. 다음 생에서는 부디요. 알았죠?”
양복이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 뒤 벽돌을 높이 들어 남자의 머리를 다시 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거듭된 가격에 결국 남자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2013년에 단편소설 「전복」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급소』, 『사이드 미러』, 장편소설 『캐스팅』이 있으며 제23회 한무숙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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