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J의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꼬불꼬불한 시골길 위에 웬 목장갑 하나가 떨어져 있었는데,
J가 놀라 핸들을 움찔했었다.
순간 그게 사람 손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순간, 이 소설의 모든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글을 쓰면서 그런 순간이 잘 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으나,
섬광처럼 스친 그 순간의 느낌을 글로 표현해내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공들여 썼다.
이 소설은 ‘적의’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까지 나를 괴롭히고 있는 적의의 한 종류만 다루었다.
모든 이야기는 완성되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고 믿는 나는,
쓰지 못한 나머지의 때를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간다.
나는 딱 한 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 따라오이소.”
흙집은 방음에 취약했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적이 있었다.
“춥다. 집에 가자.”
“예, 집에 갑시다, 아버지.”
저벅저벅 멀어지던 발소리는 거침이 없어서, 그 길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달이 반쯤 밝게 뜬 밤이었다. 나는 뒷간에 가는 척 몰래 마당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방 옆으로 나 있는 샛길을 담장 너머로 쳐다보았다. 샛길 위에는 가죽 장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낯이 익었다. 노망나서 방에만 있다던 천관 아재의 것이었다.
천관 아재는 날씨가 추워지면 꼭 안에 담비 털이 달린 가죽 장갑을 손에 끼고 다녔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침을 놓을 줄 아는 노인이었다. 병원에 쉽게 가지 못하던 시절, 동네 사람들은 탈이 나면 천관 아재의 집으로 향했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천관 아재를 ‘약손 양반’이라고 부르며 존경했다. 천관 아재에겐 신념이 있었다. 침을 놓는 사람은 손끝의 감각이 예민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질 때쯤엔 장갑을 꼭 끼고 다녔다.
그 똑똑한 노인에게도 갑자기 치매가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웃사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될 거라는 것도, 그 길로 몇 달 못가 장례를 치르게 될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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