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은 1881년에 태어나 1955년 세상을 떠난 예수회 수도사 출신의 가톨릭 신부이다. 프랑스 관념주의 철학자이기도 하고 고생물학자, 지질학자이기도 한 그는 ‘오메가 포인트 이론(Omega Point Theory)’을 고안했다. 그것은 우주가 진화해 가는 최고 수준의 복잡성과 의식을 의미하는 궁극의 종착점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샤르댕의 문장 하나를 마음에 품고 살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 우주는 무엇인가에 대한 무한 의구심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고, 그 한 문장의 내용이 내가 평생 공부하고 찾아낸 바로 그것의 핵심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적 경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된 경험을 하고 있는 영적 존재다.”
샤르댕이 절묘하게 압축 요약한 저 문장과 『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근본 이유는 일맥상통한다.
나는 쿄쿄가 원하는 대로 의자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 안개와 가을비, 그리고 도시의 야경이 완연한 물질세계의 풍경을 드러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해서 주변을 둘러보자 방금 전까지 보이던 쿄쿄의 형상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거, 장난하나?”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자 내가, 그러니까 나라고 믿으며 살아온 178센티미터, 72킬로그램의 물질덩어리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초인의 집도 사라지고 배경을 이루던 산도 도시의 야경도 온데간데없었다.
오직 어둠뿐인 공간에 붙박인 채 나는 감당하기 힘든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어둠이 아니고 질감과 부피, 깊이를 모두 지닌 공간이었다. 하지만 한순간 뒤, 주변은 백광의 공간으로 거짓말처럼 바뀌었다.
그때 쿄쿄가 다시 내 앞에 형상을 드러냈다.
“당신은 이런 환경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물질을 해체해서 의식 차원으로 돌려보낸 것도 아니에요. 나는 오직 당신의 차원에서 에너지 파동을 바꿨을 뿐이에요. 자, 두려움을 내려놓고 원하는 대로 움직여 보세요.”
그 순간 날고 싶다는 생각이 충동적으로 뇌리를 스쳐갔다. 쿄쿄는 나에게 아무런 코치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이전에 지도를 받았던 것처럼 오른쪽 발을 들어 30센티미터 정도의 허공에 걸었다. 등줄기에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가 싶었는데 허공에 오른발이 고정되었다. 이어 왼발을 들어올리자 상체가 자연스럽게 수평을 이루며 비행자세가 되었다.
다음 순간, 나는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렇게 날 수 있다는 걸 이전에 이미 배운 적이 있었던 것 같은 기이한 자연스러움이 되살아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쿄쿄 앞에 서 있었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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