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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문장8: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소설 장편 분재

박상우 2024-09-08

ISBN 979-11-93452-57-8(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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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쿄는 여러 차원을 옮겨다니며 다양한 견인학습을 진행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차원의 진동 속에서 수련을 받아왔다고 했다. 모든 물질적 형상에는 초의식적 지성이 관여되어 있고 물리적 우주는 지성과 질료의 결합이라고 했다. 의식에너지가 물질을 만들고 그것이 다시 의식에너지로 돌아가는 패턴이 우주적인 윤회 방식이라는 것. 그와 같은 패턴 때문에 이 우주에 죽음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쿄쿄는 강조했다. 오직 인간들만 죽음의 개념을 만들고 스스로 그것에 갇혀 살 뿐이라는 것.

쿄쿄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동안 나는 그렇게 소모적인 우주적 윤회 방식이 왜 필요한 거냐고 따져 물은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이렇게 응대했다.

“물질이 진화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물질을 통한 진화 학습을 위해 모든 사람에게 인생이라는 스토리 프로그램이 주어져요. 물질세계에서 인생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인간의 의식은 지속적으로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돼 있어요. 현실 의식이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단 일주일 만에 스토리코스모스닷컴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한국의 유명 여배우가 자신의 계부를 살해하고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은 CNN, CBS, NBC, ABC, BBC, TF1, ZDF, CCTV, NHK 등등의 세계적 보도망을 통해 퍼져나갔다. 사건 자체보다 그녀가 스토리코스모스닷컴에 자기 삶의 내력을 상세히 밝히는 글을 바로 쓰기와 다시 쓰기로 나누어 올렸다는 점이 알려짐으로써 엉뚱한 호기심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사이트는 트래픽 초과로 여러 차례 다운되고 복구되는 일이 되풀이되었지만 안시연의 뒤를 이어 자신이 살아온 인생 스토리를 바로 쓰고, 자신이 살아가고 싶은 인생 스토리를 다시 쓰는 사람들의 수는 일주일 동안 삼천 명을 넘어섰다.

저마다 스토리 명상에 도전한다며 안시연 정도로 냉혹한 자기 통찰을 거침으로써 이전까지의 자기 미화적 고백류 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거나 끔찍하거나 가슴을 저미게 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고백류 장르의 새로운 분야가 단숨에 개척된 것처럼 보여 나도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그와 같은 현상에 대해 방송과 뉴스에서는 연일 분석하고 토론하고 집중취재하는 코너를 마련해 잡다하고 구구한 해설이나 해석의 말과 글을 쏟아냈다. 경찰대 교수,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심지어 뇌과학자까지 나서서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쏟아냈다.

안시연이 일으킨 사건에 대한 충격이 안시연의 입장에 대한 감정이입을 거쳐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반사적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스토리 명상을 자기 인생 스토리에 대입해 보려 한 것일 거라는 평범한 분석으로부터 일종의 모방 본능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베르테르 효과 같은 동조 자살이 생겨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는 심리학적 견해, 나아가 스토리코스모스닷컴 사이트에 올려진 비밀문장의 메시지가 물리학적 바탕을 지닌 사유로 판단되지만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들이 아니니 무시하는 게 좋을 거라는 경고의 말까지 덧붙여졌다.

그들의 잡다한 견해를 접하는 동안 나는 쿄쿄가 나에게 전한 메시지를 되새겼다. 다른 출구가 없었다. 답답하고 안타깝고 짜증나고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날마다 술을 마시고 탄식하듯 쿄쿄, 쿄쿄, 하고 목에 가시가 걸린 듯한 발음을 토하곤 했다.

“3차원 세계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실재를 제대로 반영하고 전달하지 못해요. 하나의 문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우주적인 시간으로 환산하면 너무 느리고 그 결과물은 지나치게 원시적인 패턴을 지니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부정확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른 차원의 육체를 지니지 않은 의식체들은 언어 대신 전자기적 이미지를 만들어 소통하죠.”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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