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설 속에 등장한 딥퍼플, 즉 심보라라는 존재를 만나고 정신적으로 많이 이끌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이한 친연성을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어 그녀가 소설에 등장할 때마다 기이한 매력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과 같은 대사를 터뜨릴 때 하마터면 비명을 터뜨릴 뻔했다. 누군가 내 기억의 세계를 해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무리 따져보고 찾아봐도 인생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 그저 존재하는 거야. 존재하는 것 말고 달리 뭐가 있어? 가능하면 즐겁고 기쁘게, 사랑을 나누면서 존재하는 게 최상이고 최선이지. 지금 이 순간, 나는 너하고 통하고 싶다, 그거면 족한 거 아니겠어?”
옥상으로 나오자마자 삭발과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헬리포트 안으로 기어들어가 녹다운 자세로 뻗었다.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지쳐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삭발의 감시와 도무지 융화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여기서 뭘 어쩌겠다는 거죠?”
숨을 고른 뒤 삭발에게 물었다.
“기다려라, 잠시 뒤면 우리 비행 편대가 나타날 거다. 그러면 우린 미련 없이 여길 떠나 본대로 돌아가는 거다. 본대로 돌아가면 너는 다시 심판대에 서게 되겠지?”
“나는 당신이 말하는 조나단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착각하는 거 아닌가요?”
“웃기지 마라. 나는 너의 DNA 염기서열까지 확인했다. 너는 조나단이 틀림없어. 백분율로 말해 네가 조나단이 아닐 확률은 제로다.”
삭발과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헬리포트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몹시 심하게, 한둘이 아니라 몇 명이 동시에 곯아대는 소리가 듣기에 따라서는 헬리콥터 랜딩 소음을 방불케 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웃음이 밀려나왔다. 미칠 지경이었다. 어금니를 악다물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괄약근을 한껏 조여도 밀려나오는 웃음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
“아, 이런, 아하, 이런, 이런, 이런, 이런 또라이 새끼들, 이런 또라이 새끼들을 도대체 어쩌면 좋으냐. 아후하하, 아푸하하, 아카카카, 이 미친 개또라이 새끼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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