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여러 경로와 단계를 거쳐 스스로 완성을 지향해 간 건 나의 의도라고 보기 어렵다. 보통 작가들은 책을 출간하고 나면 그것과 물질적 정신적으로 결별하는 게 보통이다. 나도 그런 책들을 여러 권 경험했다. 하지만 이 소설만은 그런 관행이 통하지 않았다. 2005년부터 시작된 예기치 않은 경로가 무려 2024년까지 진행되었다는 건 제정신 지닌 작가로서는 지속하고 집중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고로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이전에 내가 머물던 소설 세계와 완전히 결별하게 되었다. 소설뿐 아니라 소설가라는 존재성, 인간이라는 존재성까지 송두리째 다른 층위로 이격된 느낌이 완연하다. 2016년에 처음 썼던 ‘작가의 말’에도 그것을 반영하는 문장이 남아 있다.
<소설이 삶의 전부라고 믿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소설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었다. 고통을 부둥켜안고 살던 시절에 나는 잡스럽고 오만방자한 무지와 욕망의 덩어리였다. 결국 ‘안’에서 ‘밖’으로, ‘꿈’에서 ‘깸’으로 이동하느라 많은 인내와 관조의 시간이 흘렀다. 소설을 쓰는 것만이 능사라고 믿던 시절로부터 쓰지 않고 견디는 것이 훨씬 힘겨운 도(道)라는 걸 깨치는 동안 나는 ‘안’에서 ‘밖’을 내다보다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낯선 존재가 되었다. 나는 소설을 쓴다고 믿고 있었는데 결국 소설이 나를 썼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서류 서명을 끝낸 뒤, 나는 또 다른 밀실의 검은 유리막 앞에 앉혀졌다. 내가 앉은 작은 테이블 위에는 흰 백지 여러 장과 수성펜이 준비돼 있었다. 유리막 안쪽에 사람이 있는 모양 가벼운 기척과 목을 가다듬는 듯한 잔기침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낮고 은밀한 질문이 던져졌다.
“소설은 허구의 산물인가?”
“소설이 허구의 산물인지 아닌……”
“예, 아니오. 둘 중의 하나로만 대답해!”
“……”
“다시 묻겠다. 소설은 허구의 산물인가?”
“아닙니다. 그런 규정 자체가 허구의 산물입니다.”
“그럼 소설은 뭔가?”
“소설은 대설우주에 대한 상징적……”
“닥치고 따라 해라. 소설은 허구의 상징이다.”
“……”
“따라 해라. 소설은 허구의 상징이다!”
“소설은 허구의 상징이다!”
“알겠나?”
“……”
“대답하지 않으면 이 방에서 못 나간다.”
“……”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넌 퇴소할 수 없다.”
“……”
“소설은 뭐?”
“……허구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네가 쓴 소설은 허구이다. 맞나?”
“……”
“맞나?”
“……”
“대답 안 하면 퇴소 심의 여기서 종료하겠다. 네가 쓴 소설은 허구이다. 맞나?”
“…… 맞습니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네가 쓴 소설이 허구라는 걸 입증하는 문서를 작성한다.”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스러지지 않는 빛」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99년 중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으로 제23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9년 소설집 『인형의 마을』로 제12회 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제12회 이병주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사탄의 마을에 내리는 비』 『사랑보다 낯선』 『인형의 마을』 『호텔 캘리포니아』 『내 마음의 옥탑방』 『가시면류관 초상』 『운명게임』『비밀문장: 지구행성 게스트하우스 손님용 보급판』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내 영혼은 길 위에 있다』 『반짝이는 것은 모두 혼자다』 『혼자일 때 그곳에 간다』 『소설가』 『검색어 : 삶의 의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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