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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망록

소설 중편

장성욱 2024-10-06

ISBN 979-11-93452-71-4(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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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내가 겨우 알고 있는 몇 가지 코미디 형식을 차용해 쓴 소설입니다. 나는 나 자신이 90% 정도 코미디 작가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런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은 네가 쓰는 건 코미디가 아니라고 혼내요. 힝 너무해.

코미디를 쓰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그러니까 종교적인 믿음이 필요해요. 내가 하는 이야기가 분명 웃기리라는 믿음. 비극이 개인적이라면 희극은 사회적이며, 내가 하는 건 하찮은 짓거리가 아니라는 믿음. 프란츠 카프카는 위대한 코미디 작가이며, 사무엘 베케트는 부적절한 코미디의 장인이고, 필립 로스는 슬랩스틱의 대가였다는 믿음.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는…… 아, 아닙니다. 또 여기에는 수많은 교리가 있어요, 정말 위대한 그런…… 과장과 비약, 반복과 변주, 풍자와 해학, 농담과 역설과 패러디와…… 게다가 많은 기술도 배워야 하는데…… 진부함을 기발하게 이용하고…… 칭찬처럼 독설을 뱉고…… 진실하게 농담하며…… 시력교정용 안경인 척 색안경을 끼는 음흉함과……

만일 다른 작가가 이 소설을 쓰고, 내가 읽었다면 나는 그를 마음 속 깊이 응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내가 썼으니, 나는 나를 응원하기로 한다. 나는 쓰도록 하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하는 방식으로. 잘 하고 있다고 믿으며.

당신은 소설가의 기, 본, 자, 질도 되지 않은 사람이야.

사서가 기, 본, 자, 질을 한 음절씩 끊어가며 말했다. 단호한 어투였다. 나는 금세 눈가가 따끈따끈해졌다. 못쓴다는 소리는 수도 없이 들어봤지만 이런 식의 지적은 처음이었다. 기본자질이라니 세상에.

그래요. 저는 미천한 습작생일 뿐이죠.

나는 고개를 숙이고 조금 촉촉한 느낌으로 매엠매엠 울었다. 사서가 이거 안 되겠는데,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습작생이면 가서 소설작법서라도 읽으세요.

사서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작법서라니, 눈물이 그칠 정도의 충격이었다.

세상에 그런 책도 있답디까?

사서가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 이제 눈물을 닦고.

정말로 세상에는 소설작법서라는 책이 있었다. 심지어 한 권도 아니었다. 그들은 당당하게도 하나의 거대한 카테고리를 가지고 서가의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그 엄청난 양에 한 번 울고, 도대체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를 몰라서 두 번 울었다.

맴맴맴맴.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화해의 몸짓』

 

lounnico@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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